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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구경거리였던 훌리아, 153년 만에 안식
동아일보
업데이트
2013-03-10 11:12
2013년 3월 10일 11시 12분
입력
2013-03-10 11:12
2013년 3월 10일 11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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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리아 파스트라나. 출처=MBC화면 캡처
원숭이를 연상하게 하는 외모 탓에 전 세계 공연장에서 구경거리로 내몰렸던 훌리아 파스트라나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공개됐다.
10일 방송된 MBC '신기한TV 서프라이즈'는 사후 153년 만에 모국으로 돌아와 장례식을 치른 훌리아 파스트라나의 사연을 전했다.
멕시코 원주민 출신인 훌리아 파스트라나는 1834년 북부 시날로아주(州) 소도시인 시날로아 데 레이바에서 얼굴이 온통 털로 덥히고 턱이 튀어나온 채 태어났다. 유전질환인 '다모증' 때문에 이런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괴물'로 무시당했던 파스트라나는 20세가 되던 1854년 미국인 공연 기획자인 시어도어 렌트의 손에 이끌려 멕시코를 떠났고 미국과 유럽을 돌아다니며 '괴물 쇼' 광대로 인생을 보냈다.
그는 이후 렌트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지만 출산 합병증 탓에 1860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떴다.
하지만 남편인 렌트는 죽은 파스트라나의 시신을 방부 처리해 무대에 올렸고 우여곡절 겪은 끝에 시신은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 보내졌다.
2005년부터 파스트라나의 시신을 고향 멕시코로 돌려보낼 것을 요구하는 운동이 벌어졌고 결국 파스트라나는 153년이 흐른 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2월 12일 시날로아 데 레이바에서는 고향으로 돌아온 파스트라나의 영면을 바라는 장례식이 치러졌다.
마리오 로베스 시날로아 주지사는 "그가 맞닥뜨려야 했던 폭력과 학대를 그가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상상해보라. 매우 위엄 있는 이야기"라며 안식에 들어간 파스트라나의 넋을 위로했다.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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