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시계야 빨리 돌아라.’ 애인을 군대에 보낸 것도 아닌데, 요즘 이런 마음이 드는 이유가 뭘까? 영화 ‘파파로티’(14일 개봉)를 끝으로 군대 간 이제훈의 연기가 그립기 때문이다.
‘파수꾼’ ‘고지전’에서 “연기 좀 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이제훈. ‘파파로티’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정점을 이루는 영화다. 그는 이 영화에서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서 자라 조폭이 된 고교생 장호로 변신했다. 하지만 장호는 성악가로서 뛰어난 재능과 열정을 가졌다. 좌절한 천재 성악가로 교사가 된 상진(한석규)이 그와 티격태격 정을 나눈다.
이제훈의 연기는 대선배 한석규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투톱 무비에서 한 배우의 연기가 기울었다면 작품은 망가졌을 것이다. 이제훈은 조폭과 고교생으로 이중생활을 하는 어려운 캐릭터를 흠잡을 데 없이 소화해냈다. 조폭이라는 낯선 역할을 의식해 오버하지 않았다.
두 배우의 치열한 연기대결은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윤종찬 감독에 따르면 이제훈과 한석규는 촬영 내내 서로를 의식하며 경쟁했다. 상대의 촬영분을 보고 자신의 장면을 다시 찍자고도 했다. 상대의 연기가 자기 연기보다 좋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와 영화 ‘베를린’에서 녹슬지 않은 연기력을 뽐낸 한석규도 새파란 후배의 패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제훈의 다작이다. 그는 지난해 봄 ‘건축학 개론’부터 ‘점쟁이들’ ‘분노의 윤리학’, 그리고 이 영화까지 1년 동안 네 편을 찍었다. 군복무 기간에 잊혀지는 게 두려웠기 때문인지 최대한 많은 작품을 남기고 갔다. 입대 이틀 전인 지난해 10월 23일까지 ‘파파로티’를 촬영하는 의지를 보였다.
배우들의 큰 두려움은 잊혀지는 것이다. 그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이 영화를 통해 그는 관객의 뇌리에 꽤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고지전’의 목욕신에서 선보인 매력적인 뒤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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