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덕 감독의 데뷔작 ‘연애의 온도’가 21일 개봉 이래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영화는 24일까지 64만 명을 넘게 모았다. 지난해 411만 명을 동원했던 ‘건축학개론’과 비슷한 흥행 추이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박훈정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신세계’는 431만 명을 모았다. 이 영화는 잔인한 장면이 많은 ‘19금(禁)’이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앞세워 관객몰이 중이다.
지난해 1월부터 현재까지 100만 관객을 넘긴 한국영화는 모두 36편. 이 중 감독의 데뷔작이거나 두 번째 작품인 경우가 15편으로 42%에 이른다. 우선 조성희 감독 데뷔작인 ‘늑대소년’이 665만 명으로 가장 많은 관객을 모았다. 박주호 감독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490만 명), 조근현 감독의 ‘26년’(296만 명), 정병길 감독의 ‘내가 살인범이다’(272만 명)도 데뷔작으로 많은 관객을 모았다. 정기훈 감독의 ‘반창꼬’(247만 명), 변성현 감독의 ‘나의 PS 파트너’(183만 명), 우민호 감독의 ‘간첩’(131만 명)은 두 번째 연출작으로 흥행에 성공한 경우다.
이 신인 감독들은 다양한 장르의 작품과 독특한 이력으로 충무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단편 ‘짐승의 끝’을 통해 파괴적 상상력을 선보인 조성희 감독은 장년층 여성까지 매혹한 독특한 멜로물 ‘늑대소년’으로 주목을 받았다. 정병길 감독은 스턴트맨, 박훈정 감독과 ‘이웃사람’의 김휘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다. 조근현 감독은 ‘마이웨이’ ‘후궁: 제왕의 첩’ 등의 미술감독을 지냈다.
영화계는 역량 있는 ‘준척급’ 신인 감독들을 반기면서도 ‘대어급’이 나오지 않는 현실을 아쉬워한다. ‘살인의 추억’ ‘괴물’의 봉준호,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의 박찬욱처럼 흥행성과 예술성을 아우른 감독이 없다는 것. ‘써니’의 강형철, ‘추격자’의 나홍진, ‘의형제’의 장훈이 젊은 흥행 감독이지만 예술성은 전 세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있다. 주요 해외영화제의 단골손님들도 여전히 김기덕 이창동 홍상수 임상수 같은 ‘올드 보이’들이다.
흥행성과 예술성을 갖춘 젊은 감독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투자, 배급사 위주의 영화시장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당장의 흥행에만 목맨 대기업계열의 투자, 배급사가 작가주의 감독의 활약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990년대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등장은 제작사 중심의 구조여서 가능했다. 김보연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센터장은 “당시 우노필름의 차승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 등은 손해를 보더라도 신인 감독을 밀어주는 대표적인 제작자였다”고 말했다. 노종윤 웰메이드필름 대표도 “요즘 감독들의 영화에 대한 해석, 표현 능력은 전 세대보다 뛰어나다. 문제는 한 편만 실패하면 두세 번째 작품을 연출할 수 없는 각박한 환경”이라고 했다.
“할리우드 스타일을 따라하는 기획영화로는 지금의 호황을 이어갈 수 없다. 작가주의적 개성을 가진 감독이 나와야 한국영화가 계속 전진할 수 있다.” 심재명 대표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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