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얘기지만 장궈룽(張國榮)은 내게 주변부였다. 홍콩 영화에 주말을 빼앗겼던 시절 그는 항상 주인공의 ‘옆’에 있었다.
장궈룽을 한국에 알렸던 ‘영웅본색’에서 주인공은 저우룬파(周潤發)였다. 성냥개비를 질겅질겅 씹으며 쌍권총을 쏘던 그는 남학생들의 우상이었다. ‘영웅본색2’에서 장궈룽이 전화박스에서 죽어가던 장면보다 ‘영웅본색1’의 저우룬파가 수십 발의 총을 맞는 장면이 더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천녀유혼’은 왕쭈셴(王祖賢)의 영화다. 도무지 동양인 같지 않은 큰 키와 긴 머리가 매혹적인 배우. 이 영화의 명장면은 왕쭈셴이 요괴를 피해 물속에 잠수한 장궈룽에게 산소 공급 키스를 하는 장면. “아! 나도 저 물속에 있었으면.”
청춘의 자기파괴적 낭만을 담은 배우는 류더화(劉德華)였다. 애인의 웨딩드레스를 구하기 위해 가스통(기억이 정확하지 않다)으로 쇼윈도를 박살내던 ‘천장지구’의 마초 배우다.
예술적 성취라는 면에서는 량차오웨이(梁朝偉)가 먼저 떠오른다. ‘화양연화’ ‘적벽대전’ ‘색, 계’ 등에서 그가 보여준 남성적이면서도 섬세한, 양립 불가능한 연기는 단연 돋보였다.
장궈룽이 내 눈에 들어온 작품은 천카이거(陳凱歌) 감독의 ‘패왕별희’. 이 영화에서 장궈룽은 경극에서 여자 역할을 하는 배역을 맡았다. 여성스러운 그의 실제 모습과 닮아 있다. 그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여성성과 남성성 사이를 오가는 역할을 절묘하게 소화해 냈다.
류더화, 저우룬파, 청룽(成龍) 등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배우가 많았던 홍콩에서 장뤄룽의 위치는 독보적이었다. 그는 유약해 보이지만 풍부한 감수성으로 마초 배우들이 채울 수 없는 역할들을 메웠다. ‘동사서독’ ‘해피투게더’ ‘아비정전’은 그가 아니었으면 영상화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중국으로의 반환에 즈음한 불안이 팽배했던 홍콩. 이런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장궈룽만 한 배우가 또 있었을까. 인생의 답을 찾을 수 없다는 듯 매 순간 끊임없이 흔들리는 그의 눈빛은 홍콩을 대변했다.
어제 만우절, 10년 전 이날 그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는 거짓말 같은 뉴스가 거짓말이었다는 기사를 기다렸다. 미국 밴드 더 터틀스가 부른 ‘해피투게더’의 주제곡을 들으며 말이다. 봄바람에 너무 취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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