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동창인 두 남녀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별한다. 5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하지만 결혼을 앞두고 여자가 암으로 세상을 뜬다.
‘선물’ ‘작업의 정석’의 오기환 감독이 연출한 한중 합작영화 ‘이별계약(分手合約)’은 줄거리만 보면 한국에서 흔히 보던 신파 드라마 같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해피엔딩의 사랑 이야기에 익숙했던 중국 영화 관객들에겐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12일 현지 개봉한 ‘이별계약’은 상영 첫 주 중국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티켓 누적판매액 2억 위안(약 360억 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역대 한중 합작영화 중 누적판매액이 1억 위안을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에는 ‘이별계약’에 대해 “너무 슬프다” “감동적이다”는 반응이 많다. ‘눈물’을 상품화한 한국형 멜로가 중국 시장에서 제대로 먹혀든 셈이다.
제작진은 ‘한국형 멜로’의 현지화를 위해 기획 단계부터 중국 시나리오 작가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했다. 예컨대 한국 멜로에서 등장하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이별계약’에는 안 나온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은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눈물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게이 친구에게 “그 애(남자친구)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길 정도로 씩씩하다.
오기환 감독은 “(중국) 대륙식 여성 캐릭터는 눈물을 숨기고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한국의 가장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초기에는 여성 캐릭터가 너무 강하지 않은지 고민했지만 중국 시나리오 작가와 배우들이 하나같이 여성이 약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관객들은 대륙의 여자(중국 출신 여배우 바이바이허)가 대만의 남자(대만 출신 남배우 펑위옌)를 품는 구도를 좋아했다.”
극의 구성도 차별화했다. 한국식 멜로의 경우 극 초중반부터 주인공의 죽음을 암시하고 눈물 코드로 전환되는 것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극의 3분의 2가 지나서야 병을 알고, 남녀 주인공이 슬픔을 견디는 장면이 등장한다. 주인공의 병세를 알리는 데 은유적 표현 대신에 좀더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을 사용한 것도 중국 스태프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이 영화를 기획한 CJ E&M의 이기연 영화사업부문 해외투자제작팀 과장은 “같은 최루성 멜로라도 한국과 중국 관객에게 슬픔의 정서를 이해시키는 방식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별계약’의 성공을 보며 케이팝과 드라마 한류 인기에 이어 중국 시장에서 한국 영화의 인기몰이가 시작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해 ‘만추’ ‘위험한 사랑’ 등 합작영화가 중국에서 개봉돼 좋은 성과를 낸 바 있으며 ‘이별계약’의 흥행 호조도 이런 흐름 가운데 있다는 설명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학과 교수는 “중국은 최근 5∼10년 사이 영화관 관람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며 “자국 문화 콘텐츠는 부족한 상황에서 같은 아시아 문화권인 한국의 세련된 코드가 중국 시장에서 한동안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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