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최강희(36). 4차원이라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첫인상부터 남다른 포스. 뒤로 질끈 묶은 머리, 손톱 위 고양이 그림, 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는 대신 고개를 숙여 개구리가 파리 잡듯이 혀로 빨대를 감는 모습…. “범상치 않다”고 느끼는 순간 인터뷰가 시작됐다. 이번 영화는 16일 개봉하는 ‘미나 문방구’. 그는 시골 문방구 주인 미나로, 봉태규가 그의 초등학교 시절 친구로 나온다. 정익환 감독의 장편 데뷔작.
첫 질문 “(영화에 나온 것처럼) 문방구 주인으로 딱이다”라는 말을 던지자 쉴 새 없이 답이 쏟아졌다. 순간 ‘아, 이 친구는 40대 아저씨 기자의 뻣뻣한 그릇에 담을 수 없는 ‘물건’이다’ 싶었다. 평가는 자제하고 그가 말한 대로 적기로 했다.
―외모가 문방구 주인으로 딱이다.
“시나리오 받았을 때 배역과 어울릴지 몰랐다. 근데 다 읽으니 ‘힐링’이 되더라. 아버지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를 유년시절로 데려갔다. 기억 속 아버지와 화해하고 스스로를 치유한 느낌이었다.”
―기억 속 아버지는….
“나처럼 4차원이셨다. 비디오가게를 했는데, 경리 언니한테 맡기고 놀러만 다니셨다. 엄마는 ‘아빠가 언제 올지 모른다’며 항상 화장을 하고 있었다. 아빠는 구멍 난 양말만 신었다. 내가 20대 초반에 돌아가셨는데, 임종 때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다. 집에서 장례를 지냈는데, 병풍 뒤 관 속에 계실 때도 그 말을 못 했다. 그 기억 때문에 대본 보고 펑펑 울었다.”
도청 공무원인 미나는 ‘과격한 업무 집행’으로 정직당한 뒤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대신해 시골 초등학교 앞 문방구를 책임진다. 거기서 옛날 아빠의 사랑, 어린 시절 추억과 재회한다. 미나와 문방구를 찾는 초등생들이 엮어가는 훈훈한 이야기가 정겹다.
―영화에 나오는 딱지, 쫀드기, 고무줄놀이가 좋았다.
“어릴 적 ‘영구와 땡칠이’(가 그려진) 티셔츠를 즐겨 입었다. 특히 따먹기에 능했다. 지우개, 책받침, 땅 따먹기. 방방이(트램펄린)를 너무 좋아해 우유 값을 탕진한 적도 있다.”
―학창시절은 어땠나.
“내가 출연했던 ‘여고괴담’처럼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다. 여중, 여고를 나왔는데, 너무 심하게 하고 다녔다. 당시 기자님이 봤어도 ‘쟤는 뭐야’ 했을 거다. 남자 중학생처럼 짧은 머리에 끝단이 터진 교복을 입고 다녔다. 너무 조용해 왕따도 못 됐다. 단, 노는 언니들이 ‘귀 뒤로 머리 넘기고 다니지 말라’고 하더라.”
―근데 어떻게 연예인이 됐나.
“얼레벌레 미인대회에 나갔다. ‘미스 레모나 상큼상’을 받았다. 나는 하기 싫었는데 친구가 원서를 넣었다. 엄마가 도망 다니던 나를 설득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삐삐를 쳤다. ‘옷 사놓고 기다리고 있다’였다.”
―4차원은 콘셉트인가.
“4차원과 이제 헤어져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이선균이 ‘네가 4차원이면 다른 사람은 6차원이다’라고 하더라. 4차원적인 매력이 없다고 실망하더라. 원래 성격은 극히 일상적이다. 지구인이니까. 일부러 특이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나를 흉내 내는 것은 어색하지 않은가. 솔직하게 살기로 했다.”
그는 두 살 많은 이선균을 ‘이선균’이라고 했고, 일곱 살 연상인 감우성은 ‘감님’이라고 불렀다.
―어떤 점을 보고 4차원이라고 하던가.
“몇 년 전 휴대전화로 낯선 사람의 전화를 받는 게 어색했다. ‘이놈의 전화기 없어져라’고 했는데, 마침 변기에 퐁당! 얘(휴대전화)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더라. 그 뒤로 지난해까지 삐삐를 썼다. 사람 만나는 게 더디고 힘들다.”
―적지 않은 나이인데 결혼 계획은….
“건어물녀의 대표주자이지만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다만 마음에 들고, 싱숭생숭해지고, 그래서 결혼하고, 이런 순서대로 진행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이제 소개팅보다는 선볼 나이다. 호텔에서 종 들고 딸랑딸랑하는 거 해보고 싶다. 근대 왜 스캔들이 안 나지? 어제도 최다니엘, 오정세랑 영화 보러 싸돌아다녔는데.”
―동안이라 당분간은 걱정 없을 듯….
“무슨 소리인가. 보톡스, 레이저 다 한다. ‘최강희표 연기’는 이제 그만하련다. 다음 작품은 귀엽고 사랑스럽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내가 질린다. (배우로서) 재발견되는 영화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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