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 살아남고 잘사는 자 사라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4일 03시 00분


요즘 TV드라마에선 1인 2역이 트렌드
여기엔 일정한 법칙이…

이달 초 시작한 MBC 아침드라마 ‘잘났어 정말’에는 두 명의 하희라가 등장한다. 극 중 쌍둥이 자매인 둘은 한 화면에 나란히 나타나기도 한다. 하희라의 숨겨진 쌍둥이라도 출연한 걸까. 물론 아니다. 배우 한 사람이 두 사람 역할을 하는 1인 2역 드라마에 컴퓨터그래픽(CG)의 힘이 발휘된 덕분이다.

1인 2역 드라마는 최근 방송 드라마의 새로운 트렌드다. MBC 주말드라마 ‘금 나와라 뚝딱’에서 한지혜는 털털한 몽희와 화려한 유나를 연기하고 있다. 올해 초 인기를 끌었던 SBS ‘야왕’과 KBS ‘전우치’에서도 권상우와 차태현이 각각 1인 2역을 맡아 화제가 됐다. 지난해에는 SBS ‘옥탑방 왕세자’의 박유천, KBS ‘빅’의 공유, SBS ‘유령’의 소지섭이 1인 2역 연기에 도전했다.

○ 1인 2역 드라마의 세 가지 법칙

최근 방송되는 1인 2역 드라마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첫째, 얼굴은 꼭 닮았지만 성격이나 경제력은 차이가 크다. 둘 중 주인공은 가난한 쪽이 맡는다. 둘째, 경제적으로 형편이 나은 쪽은 방송 중반에 죽거나 갑자기 사라진다. 셋째, 주인공은 분신과 같았던 나머지 한쪽이 사라진 뒤 그의 삶을 대신 살아간다. 주인공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복수를 하는데 자신과 닮은 이의 죽음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동기로 작용한다.

‘금 나와라 뚝딱’에서 한지혜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다니다 말고 노점상을 하는 몽희와 부잣집에서 자라 부잣집에 시집간 유나를 연기한다. 남편과 사이가 나쁜 유나는 방송 2주 만에 집을 뛰쳐나가 사라지고, 몽희는 우여곡절 끝에 유나의 대리 역할을 하면서 악역으로 설정된 이들을 이겨내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잘났어 정말’에서도 형편이 나은 쪽이었던 동생 지수가 방송 3주 만에 억울하게 죽는다. 어렵게 살던 언니 지수는 동생 지원으로 살면서 동생을 위해 복수의 칼날을 간다. ‘야왕’에서 권상우는 이름 그대로 ‘하류’ 인생을 사는 하류와 어린 시절 헤어진 형인 변호사 차재웅을 연기했다. 먼저 죽는 쪽은 차재웅이고, 하류는 그 후 차재웅으로 살면서 피의 복수를 했다.

방송 관계자들은 “배우가 1인 2역을 계속 해내기 힘든 데다 시청자들도 헷갈릴 수 있어 둘 중 하나는 드라마 초반에 잠깐 등장해 극의 전환 장치로 활용되고 버려진다”고 설명했다.

○ 1인 2역 드라마가 유행하는 이유

1인 2역 드라마는 신데렐라나 불치병 스토리 못지않게 극적 재미를 이끌어내는 장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닮은 사람이 서로의 역할을 바꿔 살아본다는 ‘왕자와 거지’ 설정은 그 자체로 흡인력이 있는 데다 이런 설정에는 한국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출생의 비밀 스토리를 쉽게 더할 수 있어 여러모로 유용하다”고 분석했다.

1인 2역 드라마가 대중의 신분 상승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자신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층 이동을 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을 때 드라마로 대리 체험하려는 심리”라고 설명했다.

배우의 연기 변신을 지켜보는 재미도 크다. 정석희 대중문화평론가는 “1인 2역 드라마는 배우에게 어려운 연기 도전이자, 연기력을 재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라면서 “각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의상을 바꿔 입는 것은 물론이고 캐릭터 연구도 깊이 해야 한다. 외워야 할 대본의 양도 두 배 가까이 된다”고 설명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드라마#1인 2역#트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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