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관객과 만난 ‘맨 오브 스틸’ 이야기다. 예전 슈퍼맨 시리즈에서는 볼 수 없는 우주 공간과 크립톤 행성의 묘사가 흥미롭다. 슈퍼맨과 안타고니스트(극중 적대적 인물)들은 싸우면서 뉴욕 시 전체를 쟁기로 논 갈듯 갈아엎는다.
25일까지 관객은 197만 명으로 박스오피스 3위.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박이 났다고 볼 수도 없다. ‘월드 워 Z’가 개봉(20일) 이후 줄곧 1위를 달리고 있고, 두 영화보다 먼저 개봉한 ‘은밀하게 위대하게’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슈퍼맨 낯이 안 선다.
왜 슈퍼맨이 좀비(‘월드워Z’)와 바보(‘은밀하게…’)에게도 밀린 걸까? 기자에게는 이 영화에 배어 있는 크리스토퍼 놀런의 스타일 때문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잭 스나이더 감독이 연출했지만 제작자 놀런의 입김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놀런은 ‘심각하게 만들기’ 선수다. 슈퍼맨을 비롯해 생부로 나온 러셀 크로, 양부인 케빈 코스트너도 입을 한 일(一) 자로 다물고 슈퍼맨의 인생을 고민한다. 악당 조드 장군마저 크립톤 행성의 재건을 위해 고뇌하는 훌륭한 인물이다. 놀런은 원조 슈퍼맨 시리즈에 나왔던 장난스러운 악당 렉스 루더와 슈퍼맨의 신문사 동료 지미 같은 유쾌한 캐릭터를 이 작품에서 제거해버렸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도 얼마나 진지하고 어두운가. ‘맨 오브 스틸’이 한없이 무거운 이유다.
놀런의 또 다른 집착은 ‘질감’이다. 그는 2차원인 스크린 위에 3차원적 느낌을 구현하기를 원한다. 이 영화에서 슈퍼맨이 새로 장만한 옷은 보르네오산 생고무 냄새가 날 것 같은 뱀 무늬 라텍스 쫄쫄이. 질감이 살아있다. 놀런이 살려낸 배트맨도 같은 재질의 옷을 입었다. 그는 전투 장면에서 근육과 뼈가 부딪는 사나이들의 몸싸움을 스크린에 그린다. 그는 영화가 실제처럼 보였으면 하는 강박에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미식축구장을 실제로 폭파해 영상에 담았다. 하지만 안 되는 게 없는 컴퓨터그래픽(CG)에 익숙해진 관객은 놀런의 거칠거칠한 질감이 낯설다. CG의 매끄러움을 더 좋아하는 관객도 많다는 뜻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런 것 같다.
올해 불과 마흔 셋인 놀런은 현재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 일곱 살 때 아버지 카메라로 영화를 찍었다는 이 천재가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성을 무너뜨릴 차세대 주자라는 평가다. 하지만 그가 캐머런만큼 대중성 있는 영화를 만들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수천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블록버스터에 그는 작가주의 색깔을 덧입히려 한다. 차라리 그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인셉션’ 같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승부를 걸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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