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픽 림’은 여름 오락영화 시장의 강자가 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췄다. 각국의 다양한 로봇은 남성 관객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고, 스토리는 간결하면서도 매끄럽다. 워너브러더스 제공
블록버스터 영화 팬들은 올여름 신났다.
올해 900만 명을 모은 ‘아이언맨3’의 열풍에 이어 여름에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개봉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 개봉한 ‘애프터어스’ ‘스타트렉 다크니스’ ‘맨 오브 스틸’ ‘화이트 하우스 다운’ ‘월드워Z’ ‘론 레인저’에 이어 ‘퍼시픽 림’(11일 개봉) ‘레드 더 레전드’(18일) ‘더 울버린’(25일)이 대기 중이다.
지난해 개봉작이 ‘다크나이트 라이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토탈리콜’ ‘프로메테우스’ 정도였던 것에 비해 많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등 직배사들에 따르면 블록버스터들의 홍수는 우연이라는 분석이다. 기획에서 개봉까지 3∼5년이 걸리는 블록버스터의 개봉 사이클이 이번 여름에 겹쳤다는 것이다.
개봉을 앞둔 영화 중 ‘퍼시픽 림’은 특히 남성 관객이 반길 작품. 9일 시사회에서 공개된 이 영화는 한마디로 철없는 남자들을 위한 ‘로봇 종합선물세트’다. 단 3편으로 국내서 2300만 명을 모은 ‘트랜스포머’에 이어 로봇에 대한 남성들의 로망을 채워 줄 영화다.
연출, 각본을 맡은 멕시코 출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관객이 뭘 원하는지 영리하게 알고 있다. 관객이 이 영화에 바라는 점은 복잡한 스토리나 심오한 메시지가 아니다. 로봇의 화려한 외관과 그들의 활약상이다.
감독은 거두절미하고 로봇의 전투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로봇의 탄생 과정, 외계 괴물이 어떻게 지구에 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그냥 ‘통과’다.
2020년 미국 알래스카 앞바다. 외계 괴물 카이주가 바다에 출연한다. 각국 정상은 카이주에 맞서기 위해 범태평양연합방어군을 결성하고 대형 로봇 예거를 만들었다. 예거는 독일어로 ‘사냥꾼’. 미국 예거인 ‘집시 데인저’의 파일럿 롤리(찰리 허넘)가 형과 함께 출동하지만 전투 중 형이 전사한다.
5년 후 홍콩 앞바다에 다시 거대 카이주가 나타난다. 중국산 예거 ‘크림슨 타이푼’, 특대형 원자로가 에너지원인 러시아의 ‘체르노 알파’, 최신형으로 기동성이 뛰어난 호주의 ‘스트라이커 유레카’가 구형 모델인 집시 데인저와 함께 카이주에 맞선다.
영화는 원조 로봇 액션물 ‘트랜스포머’와의 차별화를 꾀한다. 우선 로봇이 커졌다. ‘트랜스포머’에서는 최대 트레일러 크기였지만, 이번에는 25층 건물 높이다. 우주를 넘나들던 트랜스포머와 달리 날지 못해 헬기로 전장에 이송한다. 주로 바다에서 전투를 벌이는 점도 독특하다.
예거는 여러모로 국산 로봇 태권V와 닮았다. 태권V의 철이가 로봇 속에 들어가 조종하는 것처럼, 예거의 파일럿도 로봇 머리의 조종실 콘포드에 탑승한다. 태권V가 철이의 태권도 동작을 따라하는 것처럼, 예거도 파일럿의 무술을 흉내 낸다. 다만 태권V는 한 명이 조종하지만, 예거에는 두 명이 탑승해 뇌신경을 공유하며 힘을 합친다는 점이 다르다.
뱀파이어 액션물 ‘블레이드 2’, 뿔 달린 괴수의 영웅담을 그린 ‘헬보이’를 통해 독특한 블록버스터를 선보여 온 델 토로 감독의 감각이 돋보인다. 암시장에서 카이주의 장기를 거래하는 밀매업자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선 주류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컬트적인 감성이 묻어난다. 그 덕에 뻔하지 않은 블록버스터가 탄생했다.
다만 전투가 주로 바닷속이나 한밤에 벌어져 몇몇 장면에서 로봇과 카이주의 형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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