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예산 영화로 대박 낸 88만원세대 감독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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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싸움에도 새우福 터졌다

고래 싸움에도 새우 등은 터지지 않았다. 올여름 영화시장 얘기다.

지난달 3일 개봉한 ‘감시자들’이 신호탄이었다. 제작비 45억 원을 들인 이 영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론 레인저’ ‘퍼시픽 림’, 제작비 220억 원의 ‘미스터 고’와 붙었지만 가장 오래 살아남았다. 이 영화의 누적 관객은 550만7000명. 나머지 세 영화의 관객을 합친 것보다 많다.

뒤이은 반전의 주인공은 ‘더 테러 라이브’. 지난달 31일 개봉한 이 영화는 제작비 35억 원으로 450억 원짜리 ‘설국열차’에 치이지 않고 살아남아 개봉 19일 만에 관객 5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달 14일 ‘숨바꼭질’은 개봉하자마자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개봉 5일 만에 200만 명이 들어 손익분기점(140만 명)을 훌쩍 넘겼다.

공교롭게도 세 영화의 감독들은 10대 후반에 외환위기, 20대에 2007년 경제위기를 겪어 자본주의의 승자 독식 게임에 익숙한 ‘88만 원 세대’다. ‘감시자들’의 조의석, 김병서 감독이 1976년과 1979년생, ‘더 테러 라이브’의 김병우 감독이 1980년생, ‘숨바꼭질’의 허정 감독이 1981년생이다. 조 감독을 제외한 3명은 이번 작품이 첫 상업영화다. 신인 감독들이 이처럼 좋은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영화계는 이들의 ‘상업적 감각’에 주목한다. 이들은 영화 제작 산업 시스템이 공고해진 뒤 영화계에 진출한 세대다. 그래서인지 세 영화 모두 안정된 프로듀서 시스템과의 협업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감시자들’의 이유진 영화사 집 대표나 ‘더 테러 라이브’의 이춘연 씨네2000 대표, ‘숨바꼭질’의 김미희 스튜디오드림캡쳐 대표는 모두 노련한 제작자다. 이유진 대표는 “앞 세대 감독들이 자의식이나 주제의식을 표면적으로 내세우길 원했다면 요즘 감독들은 상업영화의 목적을 우선시하는 편이라 협업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세 영화는 극의 흐름에 군더더기가 없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제작됐다. CCTV를 주로 활용하고(세 영화 모두), 방송사 스튜디오(‘더 테러 라이브’)나 아파트(‘숨바꼭질’) 같은 한정된 공간에서 효율적으로 촬영해 제작비를 줄였다.

또 감시사회나 계급 갈등, 주택문제 같은 사회 현상을 다루되 이념 과잉으로 흐르지 않았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젊은 감독들은 사회 문제를 미시적으로 다루되 심도 깊게 파헤치는 것은 피한다. 상업적으로 영리하게 희석시키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영상세대로서 “서사보다는 이미지를 중시하고, 이에 맞춰 영화를 만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대형 영화투자·배급사의 관계자는 “신인이 상업적 완성도가 높은 데뷔작을 낸 것은 그만큼 영상매체에 대한 훈련이 된 덕분”이라면서 “이들 감독이 영화를 공부하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는 강제규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감독이 등장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였다. 이후 제작 시스템이 체계화됐고 영화 관련 교육기관도 급증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신인 감독들의 상업적 성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강성률 광운대 문화산업학부 교수는 “쉬운 언어로 관객의 욕망을 충족시켰지만 사회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가볍거나 거칠어 아쉬움이 남는다”고 평했다. 강유정 평론가는 “요즘 같은 산업화된 시스템에서는 개성을 드러내기 어렵다. 자기 이름을 내세운 영화를 만들었던 과거 감독들과 달리 요즘 감독들은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기에는 어려운 환경이 됐다”고 지적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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