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가 흥행에 성공한 이유에 대해 여러 말들이 나온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추종하는 ‘봉빠’들의 위력, 한국 영화 최대인 제작비 450억 원의 대작에 대한 기대감,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 점을 들 수 있겠다.
기자는 영화의 돋보이는 미술적 감각을 꼽고 싶다. 열차 칸마다 펼쳐진 풍경들이 인상적이다. 십수 년의 핍박을 상징하는 때로 찌든 꼬리 칸, 파스텔을 칠해 놓은 듯 화사하기 이를 데 없는 교실 칸, 앞 칸의 호화판 생활을 응축해 보여주는 나이트클럽까지…. 열차라는 좁은 공간의 한계 때문에 영화가 지루해질 수 있다는 점을 봉 감독은 칸칸의 다양한 풍경으로 극복했다. 감독의 미술 감각이 빛을 발했다.
봉 감독은 미술가 집안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서울대 미대를 나와 미대 교수를 지냈다. 누나도 미대를 나왔다. 봉 감독은 “어린 시절 나의 놀이터는 아버지의 화실이었다”고 말하곤 한다.
봉 감독은 연세대 재학 시절 대학신문에 만화를 연재할 만큼 그림에 소질을 보였다. 그는 ‘설국열차’의 콘티를 직접 그려 구상한 이미지들을 다국적 배우들에게 설명했다. 그림이 언어보다 효율적인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유명 감독 중에는 미술을 전공했거나 미술과 관련 있는 사람이 여럿 있다. 박찬욱 감독의 부친도 건축을 전공하고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외할아버지는 서화 컬렉션을 보유할 만큼 조예가 깊었다. 박 감독의 동생인 박찬경 감독은 서울대 미대를 나온 설치미술가. 박 감독은 평소 “나도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동생이 워낙 미술에 소질을 보여 전공을 바꾼 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철학과를 나왔다.
700만 관객을 모은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장철수 감독은 홍익대 미대, ‘고지전’ ‘의형제’의 장훈 감독은 서울대 미대 출신이다. 김기덕 감독이 해병대 제대 뒤 몇 년간 프랑스를 떠돌며 거리의 화가로 활동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노장 감독 중에는 이장호 감독이 홍익대 건축미술학과를, 박광수 감독이 서울대 미대를 나왔다.
시각 언어로 말하는 영화에서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미술 전공 감독들은 유리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럼 미술에 소질이 없는 영화학도들은 감독이 될 수 없는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소설가 출신으로 이미지보다는 문자에 익숙한 이창동 감독은 인문학적 통찰로 새로운 미학을 창조하고 있다. 철학을 전공한 미하엘 하네케 감독은 이미지의 기교를 철저히 배제하고 메시지의 영상으로 2009년(‘하얀 리본’)과 2012년(‘아무르’) 두 번이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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