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영화일 뿐’이라지만 때로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 있다. 최근 인기를 얻은 한국영화 ‘더 테러 라이브’ ‘감기’ ‘숨바꼭질’은 어땠을까.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 방송기자가 본 ‘더 테러 라이브’
그 테러범 혹시 방송국 직원이었나? 방송 시스템에 대해 그만큼 파악하려면 최소 기자 및 앵커 경력 6∼7년은 되어야 한다. 또 기술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방송국 경비가 그렇게 허술하진 않다. 보도 프로세스도 엉망이다. 테러범과 거래해 21억 원이나 입금해 주다니. 시청률 70% 이야기도 나오던데 생각만큼 사람들이 뉴스를 많이 보지 않는다. 요즘처럼 다매체환경에선 엄청난 특종도 시청률 20∼30%면 정말 대단한 거다. 물론 하정우의 앵커 연기에는 박수를 보낸다. 내가 진행하는 기분이었다.(황순욱 채널A 기자)
○ 건축가가 본 ‘더 테러 라이브’
다리 무너지는 장면부터 몰입이 어려웠다. 마포대교는 각각의 교각(다리 받침대)에 상판을 올려놓은 단순 지지 구조다. 폭탄이 터지면 그 구간의 상판만 와르르 무너져야 하는데 영화 속에서는 점차 기울어지는 모양새다. 그렇게 무너지려면 마포대교가 아니라 연속보 형식인 올림픽대교 강변 쪽 구간을 택했어야 했다. 영화 막판에 방송국 옆에서 무너지는 건물은 라멘구조체(기둥과 보가 접합된 건물)인데 건물 중심에 있는 엘리베이터에 폭탄을 대량으로 설치하지 않고서는 영화처럼 기울어지기 어렵다. 영화처럼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이려면 서울 여의도 쌍둥이빌딩 같은 튜브구조 건물이 더 적당했을 것이다.(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 감염내과 전문의가 본 ‘감기’
아마도 높은 치사율 때문에 조류독감을 택했나 보다. 사람에게 감염된 바이러스 중에선 치사율(감염 후 사망 확률) 20∼30%를 넘는 게 드문데 조류독감은 치사율이 50∼70%로 굉장히 높다. 영화처럼 사람에게 감염되는 변종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이론상 가능하긴 하다. 다만 그렇게 될 경우 현재 의학기술로는 영화 같은 해피엔딩이 불가능하다. 바이러스 항체 보유자의 피를 뽑아서 감염자에게 투여하는 치료방식은 현대의학에서 흔치 않다. 게다가 영화처럼 항체 보유자가 겨우 한 명이라면, 그에게서 추출할 수 있는 항체 양은 무척 미미하다. 현재까진 항체를 대량 복제하는 기술이 없기 때문에 감염자 한 명 구하기도 어렵다. 또 영화 내내 주인공 장혁은 극한 상황에서도 감염이 되지 않았다. 그 정도 버텼으면 장혁에게도 항체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항체 보유자를 찾기 위해 그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강철인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
○ 아파트 설계 전문가가 본 ‘숨바꼭질’
영화 속 손현주의 집이 진짜 고급 아파트 맞나? 요즘 아파트는 대부분 폐쇄회로(CC)TV가 잘 설치돼 있다. 게다가 보안문제로 2000년대 이후 지어진 아파트 현관문에는 우유 투입구가 없다. 또 홈 네트워크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는 것 같던데 아이들이 비상호출 기능은 몰랐나보다. 고급 아파트라면 지하주차장에도 CCTV는 물론 군데군데 비상호출 버튼이 설치돼 있다. 아이들에게 ‘문 열어주지 말라’고만 하지 말고, ‘수상한 사람 오면 신고하라’고 가르쳤어야 했다. 그리고 화재 장면도 아쉬웠다. 대체 스프링클러가 왜 그리 늦게 작동하는지!(D건설사 설계파트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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