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봉만대’ 에로 트루먼쇼 ‘센 것’ 요구하는 제작 현실 등 담아 자서전 같은 영화지만 아내에게만큼은 이렇게 외쳤죠 여보, 영화는 다 가짜야!
에로영화 촬영장은 아수라장이다.
여주인공은 “내가 벗으러 왔냐?”며 감독에게 육두문자를 날린다. 남자배우는 연습한답시고 여배우의 속살을 더듬고, 이내 여배우와 머리채를 잡고 싸운다. 제작자는 줄기차게 “더 딥하게(진하게)” 찍어달라고 감독을 졸라댄다. 참다못한 감독의 외침. “니들이 에로를 알아?”
‘에로비디오 시대’로 통한 1990년대부터 오직 단 하나의 장르, ‘에로’에만 집중해온 봉만대(43) 감독은 “영화 속 상황과 현실은 똑같다”고 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연출과 주연을 맡은 영화 ‘아티스트 봉만대’에 대한 설명이다.
어떤 관객에겐 너무나 친숙하고 또 다른 관객들에겐 낯선 이름, 봉만대. 1999년 한일 합작 에로영화 ‘테크니컬 파울’로 데뷔해 ‘모모’ ‘터치’ 등을 만들었고, 2003년 김성수·김서형 주연의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으로 상업영화 시장에 뛰어든 인물. ‘에로 거장’이란 수식어를 가진 연출자. 바로 봉만대다.
에로 장르만 파고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첫사랑의 실패가 남긴 뼈저린 상처. 연출부 생활을 오래 했던 그는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다 결국은 에로 장르에 가닿았다. 그렇게 “여성도 보고 싶은 에로영화”를 목표로 지금까지 왔다.
“에로는 남성만의 향유 장르가 아니다. 음란한 걸 경계하는 선에서 여성도 즐기는 문화 공간이 필요하다. 내 아내도 나를 조종하며 사는데(웃음) 여성은 늘 희생당하는 모습으로만 그려진다.”
가끔은 “내 영화가 사이비가 아닌지 (멘토에게)묻는다”는 그는 “사실은 철저히 혼자”라며 “마치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같다. 노래방에서도 그 노래를 자주 부른다”면서 웃었다. 그런 그도 집에서는 “쌀 값 걱정하는 가장”이다. 8세와 4세 아들·딸의 아빠인 그는 “밤늦게 아이들 잠든 모습 보면 반성 많이 한다”고 했다.
“아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밖에서야 감독이지 집에서도 감독이냐’고. 백화점 쇼핑 대신 온라인으로 쇼핑하게 하니 미안하지. 그런데 요즘은 아내가 좀 무서워진다. 그래서 집에선 김치도, 밥도 내가 꺼내 먹는다.”(웃음)
‘아티스트 봉만대’는 인도네시아의 한 섬에서 진행되는 에로영화 촬영장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 곽현화, 성은, 이파니, 여현수 등 주연배우는 모두 실명으로 실제 처한 상황 그대로 등장한다. 봉만대 감독도 실명으로 주연과 연출을 맡았다. 시나리오도, 대본도 없이 그날그날 즉흥적인 상황을 찍은 덕분에 매 장면이 살아 숨쉰다. 웃기고, 야하고, 한편으론 찡하다.
“개성이 다른 세 여배우를 한 공간에 두고 ‘트루먼쇼’를 펼치고 싶었다. 친한 (이)파니에게 먼저 제의했고 그 뒤에 곽현화와 성은을 만났다. 현화를 만나자마자 바로 ‘섹시하지도 않은데 왜 섹시한 척하느냐’고 따졌다. 하하! ‘넌 내 타입이 아니야’라면서.”
말은 ‘세게’ 해도 봉 감독이 주목하는 건 언제나 ‘사람’이다.
“명문대 나온 개그우먼이 그 좋은 머리로 연기를 하는 걸 보면 무슨 사연이 있지 않겠나. 그걸 풀어보자고 했다. 물론 대중이 원하는 노출도 함께. 현화가 먼저 출연했던 ‘전망 좋은 방’ 때처럼 대중에게 사기 치지 말자고 했다.”(웃음)
그동안 봉 감독이 에로영화 찍으며 벌인 ‘사투’도 고스란히 담겼다. “시각의 차이 때문에 정말 힘들다”고 그는 말했다. “제작과 투자를 결정하는 주체가 모두 남자”인 탓이다.
“남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게 뭔지 알지만 여자는 부드러운 사랑의 터치, 감정을 원한다. 현장에선 더 세게 찍자는 남자 제작자와 늘 충돌한다.”
봉 감독은 고교생 때는 배우 지망생이었다. 1990년대 초반 영화 연출부로 출발해 현장을 경험했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해 한 길만 팠다. ‘아티스트 봉만대’는 어쩌면 그의 자서전 같은 영화다.
영화 시사회 날. 그의 아내가 친구와 함께 극장을 찾았다. 봉 감독은 무대에서 “여보, 영화는 다 가짜야”라고 외쳤다. 영화를 본 아내의 반응을 물었다. “시사회에서 아내가 립스틱 바른 모습을 오랜만에 봤다. 시사회 전날과는 다른 아침도 맞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