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애니 거장 미야자키의 은퇴작 ‘바람이 분다’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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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72·사진) 감독이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은퇴를 발표할 예정이다. 5일 국내에서 개봉하는 ‘바람이 분다’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바람이 분다’는 태평양전쟁 당시 가미카제 특공대가 사용한 전투기 제로센을 설계한 실존 인물 호리코시 지로(堀越二郞·1903∼1982)의 삶을 그렸다. 7월 20일 일본에서 먼저 개봉한 이 영화에 대해 일부에서는 호리코시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다른 쪽에서는 영화의 메시지가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려던 호리코시의 노력이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듯 사회가 맹목적으로 달려가면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미야자키 감독은 최근 아베 신조 정권의 역사의식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영화를 다르게 보는 두 평론가의 의견을 소개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이 분다’는 비행기와 하늘을 동경한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소년의 아름다운 꿈이 빚어낸 참혹한 결과 때문에 영화는 “군국주의를 미화한 것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대원미디어 제공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이 분다’는 비행기와 하늘을 동경한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소년의 아름다운 꿈이 빚어낸 참혹한 결과 때문에 영화는 “군국주의를 미화한 것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대원미디어 제공
    
    
“배반당한 개인의 꿈”


영화 ‘바람이 분다’는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작품 가운데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란 구절에서 제목을 따왔다. 영화의 배경은 제국주의의 광풍이 몰아쳤던 20세기 전반. 한 청년의 순수한 꿈과 낭만적 사랑, 여기에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한 개인의 삶이 영화가 다루는 소재이다. 테마로서는 일관되게 삶이 강조된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살아남으라고, 꿈꾸기를 멈추지 말라고 말한다.

하늘을 향한 청년의 꿈은 개인에겐 순수한 열정이지만 그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폭력적인 시대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에게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드는 것. 지로는 전투기를 제작함으로써 자신의 꿈을 키워나간다. 그것은 개인의 책임과는 무관한, 시대적 요구의 결과일 뿐. 바로 이런 태도로부터 영화의 ‘문제’ 내지 ‘논란’이 발생한다. 개인과 사회가 분리되고, 역사가 개인화되기도 하는…. 정치와 예술의 통일은 어렵고 예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예술가가 살아남기 위해 때론 정치와 타협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영화 ‘패왕별희’와 ‘취화선’이 이러한 의식의 일단을 드러냈으며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과 이스트반 자보의 ‘메피스토’는 그러한 분리의식을 준열하게 비판한다. ‘감각의 제국’에서 남근의 거세는 남근 숭배로 상징되는 군국주의의 거세를 은유한다.

‘바람이 분다’가 전쟁범죄 반성 등 사회·도덕적 책임은 경시하고 개인의 꿈 추구만을 강조하여, 확대되는 군국주의에 일조할 수도 있다는 지적은 일리가 없지 않다. 하지만 다카하다 이사오의 ‘반딧불의 묘’에서 그려진 전쟁의 참화와 삶(청춘)의 소멸이 그러하듯 이 영화의 작의(作意)도 파시즘과 군국주의의 비판을 향하고 있다. 물론 전쟁에 동조하고 가담한 일본 민중에 대한 연민과 위로를 담았지만 말이다.

이 영화에는 가미카제 특공대가 사용한 전투기 제로센과 수많은 히노마루(일장기)가 등장한다. 충분히 논란이 될 만하다. 미야자키 감독은 “결국 그 많은 제로센과 히노마루는 땅으로 다 떨어진다. 그럼 내 대답이 됐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미야자키 감독이 집중했던 건 군국주의에 대한 미화가 아니라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청춘들의 이야기다. 그는 ‘바람이 분다’에서 전쟁에 대한 어떠한 옹호나 찬성의 기미를 드러내지 않았다. 비록 개인과 사회(역사)를 구분지어 바라보는 노장의 태도가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이 들지만 말이다.

곽영진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총무이사    
    
     
“군국주의 합리화 의도”


이 영화는 비행기 제작을 꿈꾸는 소년이 소녀와 헌신적인 사랑을 나누고 성장해 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곳곳에 숨겨진 비릿한 군국주의의 내음과 이를 희석시키며 합리화하려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불편한 노력이 엿보여 불쾌하게 다가온다.

비행기 설계를 공부하기 위해 도쿄로 떠난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가 맞는 세상의 첫 번째 관문은 간토(關東)대지진이다. 수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며, 이로 인해 군국주의의 불길이 더욱 거세지는 그 시점에서 호리코시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가 바라보는 잔해만 남은 도쿄의 거리는 수많은 조선인이 죽음을 맞은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 조선인들이 겪었던 공포감은 처연한 사랑의 감정 속에 철저히 가려진다.

해외로 비행기 기술을 배우러 가는 호리코시 일행. 영화는 비행기술 선진국인 독일을 이를 데 없이 거만하게 묘사함으로써 약자인 일본에 대한 연민을 유도한다. 이 역시 불편한 대목이다.

전쟁에 대해 회의적인 주인공의 생각을 통해 반전의 메시지를 전한다고는 하지만 전쟁을 받아들이는 숙명론적인 태도, 그리고 이를 아련한 사랑과 소시민적인 애환으로 그려 내는 것을 보면 감독의 의도는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이의 합리화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작품 속 미쓰비시는 전범 기업이 아니다. 당시의 젊은이들은 정열을 불태우며 당당히 자신의 꿈과 조국의 근대화를 이룬 소시민들로 묘사된다. 일제강점기에 친일행동을 했던 한국인들 중 일부가 ‘그때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미야자키 감독이 영화에서 군국주의나 전범에 대해 직접적인 묘사를 하지 않은 것, 그리고 등장인물을 전쟁에 희생된 소시민으로 묘사한 것은 잘못이다. 그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을 비판하고 위안부에 대한 사과 및 보상을 촉구하며 일본의 극우세력과 선을 긋고 있다고 해도,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낭만적으로 합리화할 수는 없다.

얼마 전 한국에서 개봉한 일본영화 ‘전쟁과 한 여자’에서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상이군인인 주인공은 “도조 히데키는 A급 전범인데 왜 천황은 아니냐?”고 일갈한다. 이렇게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하고 직접적으로 반대하는 일본인이 있는가 하면 은근슬쩍 그들의 과오를 덮고 넘어가려는 이들도 있다. 이는 일본의 우경화를 부추기는 힘이 아닐까. 우경화와 군국주의로 기울고 있는 일본 사회에 쓴소리를 하기는커녕 과거의 잘못된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다.

정지욱 영화평론가
#미야자키 하야오#은퇴#바람이 분다#호리코시 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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