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미(未)개봉작인 ‘아멘’을 제외하고 다 봤다. 김 감독의 남다른 인생 경험은 ‘세상에 없는 영화’라는 축복을 선물했다. 그래서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뫼비우스’(5일 개봉)에 두 번씩이나 제한상영가 등급을 내렸을 때 화가 났다.
하지만 지난주 시사회에서 본 ‘뫼비우스’에는 그런 축복이 없었다. 영화에는 바람을 피우다 들킨 아버지(조재현)와 그의 아내(이은우), 그리고 아들(서영주)이 나온다. 화가 난 아내는 남편의 성기를 자르려다가 아들 것을 자른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아버지는 아들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애쓴다.
영화는 이걸로 끝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가져다 쓴 기존 영화들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리비도는 날것 그대로 영화에 흩뿌려진다. 마치 아스팔트 도로에 뒹구는 영화 속 잘린 성기처럼 말이다.
등장인물들은 미성숙한 존재들이다. 욕망과 신체에 구속된 남근기의 원초적 상태 그대로다. 영화가 욕망의 포로라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돌로 피가 나도록 피부를 긁어대는 ‘스킨 마스터베이션’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김 감독은 “가족, 욕망, 성기는 애초에 하나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 발상에서 멈춰버린다. 영화를 보기 위해 돈과 시간을 들이는 관객들. 이들에게 과연 영화는 돈과 시간과 바꿀 만한 교환가치가 있을까. 교환가치는 말초적 자극 말고도 신선한 재미, 삶에 대한 통찰, 잊어버렸거나 알지 못했던 감성의 일깨움 같은 것들이 아닐까. 이는 적어도 20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한 감독에게 당연히 기대하는 바일 것이다.
김 감독은 전작 ‘피에타’에서 용서와 구원의 메시지로 성숙함을 보여줬다. ‘악어’ ‘나쁜 남자’ ‘해안선’ 등 전작의 야성은 신과 모성의 품에서 길들어 세상을 향한 지혜로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 이번 영화의 퇴행이 더 안타깝다.
이번 영화를 설익은 습작이라고 해두자고 하면 김 감독에게 실례일까. 아니면 기자가 습작에 너무 열을 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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