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 돌아온 좀비… ‘또다른 소수자’를 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일 03시 00분


[이새샘 기자의 고양이끼고 드라마]英 드라마 ‘인 더 플레시’

‘인 더 플레시’에서 ‘부분적 사망 증후군 환자’로 나오는 주인공 키어런(루크 뉴베리). 오른쪽 사진은 환자임을 감추기 위해 정부에서 지급한 컬러렌즈를 끼고 비비크림을 바른 모습이다. 영국 BBC TV 화면 촬영
‘인 더 플레시’에서 ‘부분적 사망 증후군 환자’로 나오는 주인공 키어런(루크 뉴베리). 오른쪽 사진은 환자임을 감추기 위해 정부에서 지급한 컬러렌즈를 끼고 비비크림을 바른 모습이다. 영국 BBC TV 화면 촬영
올해만큼 다양한 좀비물이 쏟아진 적이 있을까. 좀비가 연애를 하고(‘웜 바디스’) 세계를 뒤덮더니(‘월드워Z’) 급기야는 아이돌 그룹이 좀비가 됐다(샤이니 ‘와이 쏘 시리어스’). 드라마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해 4월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 시즌3는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고 이달 중순 새 시즌 방영을 앞두고 있다.

올해 봄 방영된 영국 드라마 ‘인 더 플레시’도 좀비물인데 정확히 말하면 ‘부분적 사망 증후군 환자’가 나온다. ‘덜 죽는 증상’에 시달리는 이들이다. 갑자기 좀비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한 지 수년, 정부는 하루에 한 번 뒤통수에 주사하면 신경계가 재생성돼 감정과 윤리의식, 특히 죄책감을 갖게 해주는 백신을 개발한다. 정부는 수용소에서 좀비들에게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한 뒤 차도를 보이는 좀비, 아니 부분적 사망 증후군 환자를 세상으로 내보낸다.

의회에서 ‘부분적 사망 증후군 환자 차별금지법’이 통과되고 정부가 포스터와 홍보물을 돌리며 캠페인을 벌이지만 좀비와 치른 전쟁의 상처가 쉽게 치유될 리 없다. 그중에서도 주인공 키어런(루크 뉴베리)이 좀비 치료를 받고 돌아간 시골 마을 로튼은 좀비에 대적하기 위한 ‘인간의용군’이 가장 먼저 조직됐을 정도로 보수적인 곳. 종교적 광기를 양분삼아 마을을 좌지우지하는 오디 목사와 의용군 대장 빌, 의용군의 일원이 된 키어런의 여동생 젬까지 마을 사람들은 환자 키어런을 차별하고 두려워하며 때로는 공격한다.

음식을 소화하지 못하고 잘 죽지 않으며 늙지도 않는다. 썩은 피부와 허연 눈동자는 비비크림과 컬러렌즈가 있어야 가려진다. 하지만 이런 점만 제외하면 이들이 인간과 다른 점은 거의 없다. 이쯤 되면 부분적 사망 증후군 환자라는 정치적으로 매우 예의바른 단어가 무엇을 은유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는 묻는다. 과거의 노예, 여성, 유색인종, 동성애자와 이 좀비들이 다른 점은 무엇인가. 과연 누가 진짜 인간인가.

부분적 사망 증후군 환자는 모두 죽음의 고통과 좀비 시절 타인을 살해한 죄책감을 기억하는 이들이다. 약을 주사할 때마다 되살아나는 과거의 기억은 이들을 평생 괴롭히는 트라우마다. 그렇다면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를 어떻게 용서하고 또 자신이 죽인 이에게는 어떻게 용서를 빌 것인가. 갑자기 죽었던 가족이 괴물이 돼 돌아왔을 때 그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인 더 플레시’는 살과 피를 튀기며 우악스레 달려드는 대신 이렇게 폐부 깊숙한 곳을 찌르며 섬세하게 다가온다. 시즌2 제작도 확정돼 내년 중 방영될 예정이다. 주의사항 하나. 시즌1은 딱 3편뿐이니 천천히 곱씹으며 보길 권한다. 금단증상에 시달리다 ‘부분적 사망’에 이를 수 있으니.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인 더 플레시#좀비#부분적 사망 증후군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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