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소설 이론으로 문학사에 한 획을 프랑스의 유명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에밀 졸라가 13일 온라인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사과 하나로 운명이 달라지게 된 두 친구,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의 이야기를 소개한 덕이다.
13일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이하 서프라이즈)에서는 폴 세잔과 에밀 졸라가 사과 때문에 운명이 바뀌게 된 사연을 전했다.
중학교 시절, 괴롭힘을 당하던 에밀 졸라를 구해준 폴 세잔은 에밀 졸라에 사과 한 알을 선물받았다.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당시 에밀 졸라는 미술에 소질이 있어 화가를 지망했고 폴 세잔은 문학소년이었다.
폴 세잔은 사과에 흥미를 느껴 사과를 그리고 또 그렸다. 세잔과 에밀 졸라는 서로의 운명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분야에 점점 빠져들게 됐고 성인이 된 에밀 졸라는 소설가가, 세잔은 화가가 됐다. 두 사람을 친구로 이어준 사과 한 알이 서로 다른 길을 택하도록 만든 것.
어려움도 있었다. 세잔의 아버지는 그가 화가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세잔이 판사가 되길 원했기 때문. 그 사이 파리로 이주한 에밀 졸라는 소설가로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에밀 졸라는 세잔을 격려하며 파리의 한 아카데미에서 미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서신을 교환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던 사람의 우정은 예술의 현실참여에 대한 시각차이로 위기를 맞는다.
에밀 졸라는 노동자의 비극과 사회문제를 비평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며 미술도 사회 고발을 해야한다고 폴 세잔을 비판했다. 하지만 세잔의 관심은 사과 그리기 뿐이었다.
점점 멀어지던 두 사람의 관계는 1886년 에밀 졸라가 소설 '작품'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파국을 맞앗다. 소설은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못한 화가가 결국 자살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모델이 폴 세잔이었던 것. 이 책을 읽은 세잔은 에밀 졸라에게 절교를 선언했다.
폴 세잔은 이후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추앙받았지만 다시는 에밀 졸라를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1902년 에밀 졸라가 갑자기 사망하자 폴 세잔은 하루종일 자신의 작업실에서 나오지 않은 채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한편 세잔은 파리에 입성할 때 "사과로 파리를 정복하겠어" 말하기도 했는데, 사과 하나를 가지고 표현력 강한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2013년 5월 7일 뉴욕에서 진행된 경매에서 세잔이 그린 `사과`가 브루노 빈치게라 소더비 최고운영자에게 450억에 낙찰되어 화제가 되었다. 폴 세잔은 1906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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