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베를린, 베니스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린다. 요즘은 ‘세계 5대’라는 말이 나온다. 부산영화제와 토론토영화제까지 포함해서다.
올해로 18회를 맞은 부산영화제는 겉보기엔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0년 문을 연 부산영화제의 메인 상영관인 영화의전당은 칸의 뤼미에르 극장, 베를린의 베를리날레 팔라스트보다 규모도 크고 조형미도 뛰어나다.
3∼12일 열린 부산영화제는 올해 약 120억 원의 예산을 썼다. 예산이 300억 원가량인 칸영화제보다는 못하지만 이 또한 세계적인 수준이다. 영화제가 10일간 쓴 돈은 영화진흥위원회 1년 예산(약 430억 원)의 4분의 1이 넘는다.
영화 기관들은 속속 부산으로 모이고 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에 따라 지난달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먼저 이전했고 영화진흥위원회와 종합촬영소가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로써 부산영화제의 영향력은 더 막강해졌다.
하지만 영화계에서는 부산영화제의 내실 부족과 권력화 현상, 그리고 명확하지 않은 정체성을 두고 비판이 나온다.
먼저 비(非)경쟁 영화제로서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세계 3대 영화제의 경우 최우수작품상, 남녀주연배우상 등을 선정하는 경쟁 영화제다. 세계 유명 감독과 배우들은 이 영화제의 상을 받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또 영화제들은 ‘칸은 미하엘 하네케 감독’ ‘베니스는 김기덕 감독’이라는 식으로 유명 감독을 자기 사람으로 관리한다. 유명 감독이 영화제에서 계속 상을 타면서 영화제도 명성을 유지한다. 배우들은 유명 감독을 따라 영화제에 온다. 대중은 스타 배우와 감독이 몰리는 영화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부산영화제에는 이런 경쟁의 장점이 없다. 부산영화제 초기 제러미 아이언스, 쥘리에트 비노슈 등이 다녀갔지만 최근에는 중화권 배우를 제외하고 부산을 찾는 세계적인 스타가 없다. 한 연극영화과 교수는 “스타가 없는 영화제는 단팥 없는 찐빵이다. 부산이 경쟁 영화제로의 전환을 고민할 때다”라고 말했다.
영화제는 비즈니스의 장이기도 하다. 칸, 베를린, 베니스영화제에는 각국의 수많은 바이어가 몰려 세계 최고의 영화를 ‘쇼핑’한다. 하지만 부산영화제의 아시안필름마켓은 장터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지난해 아시안필름마켓에는 32개국, 181개 업체, 96개 부스가 만들어졌지만 거래는 한산했다.
올해 부산에서 만난 한 외국 바이어는 “부산은 베니스영화제(9월)와 아메리칸필름마켓(11월) 사이에 끼어 있어 장이 활발하지 못하다. 살 물건도, 팔 물건도 없다”라고 했다. 국내 영화수입사 관계자도 “부산에서 영화를 사는 일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부산영화제의 정체성도 애매하다. 유럽처럼 예술 영화제로 갈 것인지, 아니면 토론토처럼 대중적인 영화제로 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올해 부산영화제는 개막작으로 부탄 영화 ‘바라: 축복’을, 폐막작으로 한국 독립영화 ‘만찬’(김동현 감독)을 틀었다. 한 평론가는 “큰 영화제에서 상영하기에는 개·폐막작이 (소수 취향의) 마이너한 느낌이 들었다”고 평했다.
부산영화제가 아시아 최강자의 자리에서 안주하는 사이에 중국 영화제들은 급성장하고 있다. 16회를 맞은 상하이국제영화제에는 중화권 스타들이 대거 참여했고, 2011년 시작된 베이징국제영화제도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중국 영화제들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할리우드 스타들을 초청해 관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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