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듯 다른 tvN의 두 드라마 ‘응답하라 1994’ vs ‘응답하라 1997’
3년차에 세대차는 왜?
1990년대라고 해서 다 같은 90년대가 아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위쪽 사진)와 ‘응답하라 1997’의 시간 차이는 고작 3년에 불과하지만, 변화무쌍한 당시의 문화 환경은 세대 구분을 지어 놓았다. tvN 제공
18일 시작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응사)’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30대 후반 이상은 “추억이 떠올라 아련하다”는 반면, 30대 초반 이하의 시청자들은 “‘응답하라 1997(응칠)’과 다르게 이번에는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며 떨떠름해한다. 1994년과 1997년은 고작 3년 차이임에도 왜 ‘응사’와 ‘응칠’ 팬들은 커다란 세대 차이를 느끼는 걸까.
‘응사’는 지방에서 올라와 1994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스무 살 청춘들의 이야기다. 여주인공 고아라(성나정)는 연세대 농구선수 이상민에게 열광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너에게’를 듣는다. ‘응칠’은 1세대 아이돌 문화에 열광한 부산 고교생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경상도라는 지역으로 문화권을 한정했지만 방영 당시 ‘빠순이질’ 좀 해봤다 하는 전국의 모든 20, 30대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연출한 신원호 PD는 “‘응칠’은 1980년생 고교생의 이야기고, ‘응사’는 1975년생 대학생의 이야기다. 주인공 나이로만 따지면 5년의 시간 차가 난다”며 “시대적으로는 두 세대가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에 대학 생활을 했기 때문에 취업 부담을 떠안은 ‘응칠’ 세대는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던 ‘응사’ 세대의 문화에 공감하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응사’는 전작 ‘응칠’의 빠순이 이야기에 촌놈들의 서울 적응기를 더한 것 같아 보이지만, 두 드라마의 시대 배경에 깔린 문화적 특성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응사’에 공감하는, 1990년대 초반에 20대를 보낸 X세대의 키워드는 ‘전환’과 ‘일탈’이었다. 가요계에는 힙합 레게 댄스 록 등 다양한 장르음악 가수들이 등장했고, 대학가에서는 대중가요가 민중가요 노래패 자리를 점차 대체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해 듀스 김건모 강산에 등이 인기를 끌었고, 다양한 문화에 대한 소비 욕구가 폭발하면서 옛 소련 출신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감독의 ‘희생’ 같은 예술영화에도 10만 관객이 몰렸던 시기가 이때다.
하지만 1996년을 기점으로 가요계에는 대형 기획사들이 생겨나면서 아이돌 중심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90년대 새로운 문화의 서막을 알리며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6년 돌연 은퇴를 선언했고, 그들이 떠난 자리는 H.O.T.와 젝스키스가 대체했다. 다양한 장르음악보다는 ‘돈 되는’ 아이돌 음악으로 가요계가 획일화된 것도 이 시기부터다.
94학번인 차우진 음악평론가는 “1990년대 초반이 동성애 같은 과감한 소재도 파격과 일탈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지던 다양성의 시기였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기업 등 자본이 문화를 대량생산하는 주체로 바뀌었다”며 “문화적 환경이 빠르게 바뀌면서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응사’와 ‘응칠’에 공감하는 세대 자체가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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