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종영하는 SBS 주말드라마 ‘결혼의 여신’은 처음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극 초반에는 남상미가 완벽한 조건의 남자(김지훈)와 운명적인 사랑(이상우) 사이에서 갈등하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이상우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를 대신 메우는 인물은 남상미의 시어머니 윤소정이다. 요즘 ‘결혼의 여신’은 시어머니의 패악질(!)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시어머니 파워가 청춘들의 애정 신을 몰아낸 셈이다.
지난달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금 나와라 뚝딱’도 시어머니들의 드라마였다. 극 초반에는 주연급 젊은 배우들이 주로 등장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청담동 어머니’와 ‘판교 어머니’로 불리는 두 시어머니 이혜숙과 금보라의 분량이 늘어났다. 같은 방송사의 ‘오로라 공주’에서도 주연급이던 여주인공의 오빠들(박영규, 손창민, 오대규)은 갑자기 사라졌지만,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운 시누이들(김보연, 박해미, 김혜은)의 분량은 늘었다. 최근에는 여주인공의 시집살이가 극의 중심이다.
고부 갈등은 한국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하지만 예전엔 시어머니가 어디서 들어본 듯한 ’예상 가능한’ 시집살이를 시키는 밋밋한 인물이었다면, 최근 드라마 속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은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시집살이를 고안해 여주인공을 괴롭힌다.
이들은 때로 놀라운 지략을 발휘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다. ‘결혼의 여신’의 윤소정은 극 중 막내며느리인 남상미에게 임신을 강요한다. 이는 대를 잇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을 낳지 못한 둘째 며느리(이태란)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그는 며느리에게 “너는 누구 라인이냐”고 묻는다.
드라마 속 시어머니 캐릭터가 이렇게 진화(?)하는 이유는 뭘까. 가부장제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실제 가정에서 시어머니 파워는 약화됐을 가능성이 높은데 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시어머니 연배의 베이비붐 세대 시청자들이 대중문화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왜 시어머니는 악역을 맡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혹시 우리에게 ‘고된 시집살이 판타지’가 있는 건 아닐까. 현실에서 불가능한 ‘백마 탄 왕자님’ 이야기를 다양한 버전으로 즐기듯, ‘못된 시어머니’를 다채롭게 변형하며 ‘씹고’ 있는 게 아닐지.
참고로 오해받을까 봐 덧붙이자면, 나는 시어머니와 관계가 좋은 편이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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