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스케치]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100회… 탈북미녀들 못다한 토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일 03시 00분


“北서 해코지 할까 두렵긴 해도… 아직 할 얘기가 많아요”

형식은 예능 토크쇼인데 주제가 예사롭지 않다. ‘떼 토크’ 대화거리로 자주 오르내리는 인물은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와 그의 일가. 예능 프로그램이 보도 프로보다 더 심층적으로 김 제1비서의 언론 플레이 패턴과 그의 아내 이설주의 패션을 분석하는가 하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탈북여성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북한판 백마 탄 왕자의 조건’ ‘북한의 미신’처럼 깨알 같은 얘깃거리도 매주 제공한다.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도 전례 없는 예능프로다. 이 프로는 그동안 방송에서 보기 힘들었던 탈북여성을 대규모로 출연시켜 북한의 실상을 면밀히 소개한다. 이 때문에 워싱턴포스트, BBC, 르몽드, NHK 같은 유수의 해외 언론이 취재를 하고, 북한 정부로부터 견제까지 받는다. 상복도 많아 통일부 장관 표창, 서재필언론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2011년 12월 4일 시작한 이만갑이 10일 방송 100회를 맞는다. 종합편성채널의 주간 프로 중 100회를 돌파한 것은 이만갑이 처음이다. 이만갑의 성공을 이끌어낸 탈북미녀 출연진 중 이순실(44) 윤아영(31) 김진옥(28) 신은하(26) 김아라(23) 등 스타 5인방을 지난달 31일 만나 방송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만갑에 나온 후 알아보는 사람이 많을 텐데….


▽순실=오늘 아침 인터뷰하러 오는 길에도 고속도로 요금소 직원부터 주차장 직원까지 알아보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얼마 전에는 외국인인데 이만갑을 안다고 해서 신기했다.

▽은하=방송 이후 맞선 보자고 연락하는 이들이 늘었다. 얼마 전에는 미국 교포라며 연락이 왔다. 난 미국 갈 생각도 없는데….

―탈북자 신분이어서 너무 유명해지면 불안할 것 같다.

▽은하=혹시나 북에 해코지를 당할까봐 두렵긴 하다. 팬 카페가 생겼을 때 너무 부담됐다. 특히 내가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 우리 부모님이 누구이며 고향이 어디인지까지 구체적으로 쓴 글이 올라왔는데 정말 무서웠다.

▽아라=북에 남은 가족 때문에 방송용 이름을 쓰는데 누군가가 인터넷에 내 실명을 공개했다. 지금도 방송 녹화 끝나고 나면 속앓이를 한다. ‘괜한 말 한 게 아닌가’ 싶어서.

―다른 탈북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진옥=반반이다. 일부 탈북자는 ‘거짓말한다’며 방송국에 항의도 한다. 그런데 북한은 출신 성분이나 탈북 시기에 따라 각자 겪은 게 다 다르다. 평양 출신과 지방 출신이 경험한 것도 극과 극이다. 북한 사회가 소통이 안 되고 단절돼 있다 보니까 서로가 겪은 것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

―방송에서 다들 말을 정말 잘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순실=우리 같은 삶을 살면 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방송에서 나는 탈북 과정 중 여러 번 북송당해 고문당하고, 딸을 뺏기고 인신매매당한 이야기까지 밝혔다. 지금의 시부모님도 몰랐던 얘기다. 그런데도 내가 방송에서 숨기지 않고 얘기할 수 있었던 건 북한 정권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됐다. 이젠 그 분노가 내가 똑바로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됐다.

―방송을 보면 남의 사연을 듣고 우느라 눈 화장이 번진 출연자가 많더라.

▽아라=화장 지워지는 건 문제가 아니다. 꺽꺽 소리 내서 울고 싶은데 방송이라 참고 눈물만 흘려야 하는 게 정말 힘들다.

▽아영=출연진이건 제작진이건 다 운다. 특히 메인작가님이 엄청 우는데 그거 보면 슬퍼서 더 울게 된다. 그런데 그 덕분에 우리가 서로 친해지게 됐다. 함께 펑펑 울고 나면 뭔가가 해소되는 느낌도 있다.

―탈북 못지않게 한국사회에 정착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특히 어려웠던 건 뭔가.

▽아라=열여덟 살에 한국에 온 뒤에야 사춘기를 겪었다. 무시당하는 게 싫어서 북한 출신인 걸 숨기고 조선족이라고 하고 다녔다. 그런데 가끔 북한말이 튀어나오니까 완벽하게 거짓말을 하는 건 불가능했고, 친구들로부터 의심을 받았다. 많이 외로웠다.

▽아영=상대적 빈곤감이 가장 힘들었다.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그 땅(북한)을 떠나왔고 한국에 오니 배고픔은 해결됐다. 그런데 다른 것에 눈이 가더라. 헛된 욕망 때문에 잠깐이지만 다단계에 빠진 적도 있다. 탈북자 중에 나 같은 이들이 많다. 자본주의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욕망이 커져 갈팡질팡한다.

―이만갑에 출연한 뒤로 달라진 게 많지 않나.

▽진옥=탈북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고 있는 걸 느낀다. 혹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얼마 전엔 아버지와 식당에 갔는데 누군가가 우리 음식값을 계산해 주고 가셨다. 전에는 차별 받는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아영=방송 덕분에 나 자신에게 많이 떳떳해진 것 같다. 과거에는 북에서 왔다는 사실을 정말 친한 친구에게만 알렸다. 나 스스로도 탈북자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거다. 그런데 이젠 자신감 있게 생활할 수 있게 됐다.

―이만갑을 보면 앞줄 중간 자리만 집중적으로 화면에 잡힌다. 뒷줄에 앉아 있는 이들은 불만이 없나.

▽순실=그래서 앞줄 가운데는 (신)은하나 (김)아라처럼 예쁜 애들이 앉는다. 방송에서 장난삼아 앞줄로 보내 달라고 항의하지만 사실 하나도 안 부럽다. 하루에 2회 분량을 녹화하기 때문에 총 10시간 동안 스튜디오에 앉아 있어야 한다. 뒷줄에 있으면 편한 자세로 앉을 수 있고 졸기도 한다. 가끔 신발도 벗을 수 있고.

▽은하=‘센터’에서 짧은 치마 입고 꼿꼿이 앉아 있는 게 쉽지 않다. 얼마 전에 졸다가 작가님한테 혼났다. 뒷줄에 앉으면 바닥이나 앞사람 등에다가 대본을 붙여놓고 ‘커닝’도 가능하다. 난 오히려 뒷줄이 부럽다.

―출연료는 얼마나 받나.

▽아영=고정 출연자와 고정이 아닌 출연자가 다른데, 거의 두 배 차이가 나는 걸로 안다. 고정 출연자는 중소기업 초봉 정도의 월수입을 올린다. 나 같은 주부로서는 정말 고마운 자리다. 이만갑이 장수해야 할 텐데….

―100회를 맞이했다. 이만큼 오래 갈 거라고 생각했나.

▽순실=전혀. 지난해 4월 처음 방송에 나올 때 12월까지 출연하기로 계약하면서 이 프로가 설마 1년을 넘길까 싶었다. 사람들이 탈북자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이야깃거리도 별로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좋아하더라.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얘기가 아주 많다는 걸 알게 됐다. 200회는 너끈히 갈 것 같다.

▽진옥=나 역시도 이렇게 오래할 줄 몰랐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탈북자가 주인공이 된 방송이 없었다. 형식이 신선하니까 특히 관심을 받는 것 아닐까.

―앞으로의 계획, 당신의 꿈이 궁금하다.

▽아라=최근에 쇼핑몰을 열었다. 다들 옷이 안 팔리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하던데 난 괜찮다. 남은 옷은 간직했다가 통일되고 나서 북한에 전달하면 되니까.

▽진옥=아주 어린 시절부터 연기자가 꿈이었다. 남북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은하=좀 안정적인 일을 찾고 싶어서 공기업 입사 준비를 시작했다. 혹시 여유가 된다면 애견카페 같은 것도 차리고 싶다.

▽순실=이만갑에 출연한 후 안보 강연과 북한 관련 단체 홍보대사 활동을 통해 북한 인권 문제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열심히 할 것이다.

▽아영=개인적인 바람은 전공을 살려 통역 일을 하는 거다. 공부를 더 해야 할지 고민이다. 더불어 이만갑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탈북자에 대한 이해를 넓혔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평양 사투리가 부산 사투리와 다르지 않게 받아들여질 수 있길 바란다.   

▼ ‘이제 만나러 갑니다’ 이끄는 이진민PD ▼

이진민 채널A PD(37·사진)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의 카메라 밖 미녀다. 그는 개국 당시 기획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만갑을 이끌어온 숨은 주역이다. 프로그램 시작 당시 실향민 스토리를 다루다가 지금의 탈북여성 토크쇼 형식을 도입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프로그램은 유기체 같아서 계속 변한다.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나올 수 있는 얘기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향민은 80, 90대가 주 연령층이었는데 이산가족을 넓혀서 보니 탈북자가 보였다.”

어둡고 우울한 얘기로 흐르는 걸 막고, 기존 탈북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젊은 여성 출연진을 모았다. 섭외도 쉽지 않았지만 “이전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 특히 힘들었다. ‘탈북 스토리’ 위주로 내보내던 방송 초기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당시 이 PD를 포함한 작가들이 모두 시름시름 앓았다고 한다.

“워낙 기구한 사연이 많았다. 사전 인터뷰 하면서 울고, 또 녹화하면서 울고, 방송 편집하면서 울었다. 그때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는 걸 알았다.”

최근 이만갑은 탈북 스토리를 전할 뿐 아니라 탈북 과정에서 헤어진 가족을 찾아주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덕분에 8월 출연했던 북한 꽃제비 출신 최광혁 씨가 8세 때 생이별한 어머니를 19년 만에 찾는 ‘기적 같은’ 일도 있었다. 이 PD는 이때를 “방송을 하면서 가장 보람됐던 순간”으로 꼽았다. 최근 휴대용 저장장치(USB 메모리)로 한국 방송을 돌려보는 북한 주민들에게 이만갑은 인기 프로그램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5월 북한 조선중앙TV는 이만갑을 “중국 조선족을 활용한 모략극”이라고 비난했다. 이 PD는 “과거 ‘겨울연가’ ‘가을동화’ 같은 한류 드라마를 보고 남으로 오는 사람이 늘었듯 앞으론 이만갑의 영향을 받은 탈북자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PD는 현재 이만갑 외에 ‘명랑 해결단’의 연출도 맡고 있는 터라 눈코 뜰 새 없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탈북자를 소재로 한 시트콤의 연출도 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탈북자#이제 만나러 갑니다#탈북여성#평양 신데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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