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하기가 어려웠어요. 시간의 흐름이 뒤죽박죽이죠. 촬영 장면이 시간 순서에서 어디에 놓이는지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어요.”
25일 오전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재영(43)은 주연을 맡은 ‘열한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8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공상과학(SF) 스릴러. 어려운 과학 용어와 시공을 넘나드는 구성으로 머리 쓰게 하는 영화다.
시간 이동 프로젝트의 연구원 우석(정재영)은 러시아 투자기업으로부터 프로젝트의 중단을 통보받는다. 우석은 지완(최다니엘)을 비롯한 동료의 만류에도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영은(김옥빈)과 위험한 테스트 시간 이동을 감행한다. 이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도착한 곳은 24시간 뒤의 연구소. 하지만 연구원들은 모두 죽거나 사라지고 연구소는 폐허가 돼 있다. 두 사람은 현재로 돌아와 불행한 일을 막기 위해 애쓴다.
정재영은 ‘실미도’(2003년) ‘아는 여자’(2004년) ‘웰컴 투 동막골’(2005년) 같은 작품에서 질그릇 같은 연기를 선보였다. ‘아날로그형’ 배우인 그가 KAIST 출신 물리학 박사라는 디지털 캐릭터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좋아해요. 영화 너무 어렵게 생각 마세요. 블랙홀 전문가인 박석재 박사(한국천문연구원 전문위원)에게 자문을 했는데 ‘마음대로 하라’고 하시더군요. 웜홀과 시간 이동에 관한 이론들이 많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없다고요.”
그는 영화의 과학적인 장치보다는 메시지를 봐달라고 했다. “등장인물은 모두 엘리트지만 무모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입니다. 미래의 불행을 보고 와서도 그걸 막는 데 어려움을 겪어요. 인간의 나약함, 기술 문명의 폐해에 관한 영화죠.”
영화는 ‘15세 관람가’인데 원래 시나리오는 연구원들끼리의 잔혹한 살인극이었다. “(영화를 연출한) 김현석 감독님은 로맨틱 코미디나 드라마를 잘 만드는 분이잖아요. 그래서 이야기를 많이 순화했어요. 자신의 문제를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우매한 우리 모두에 관한 이야기예요.”
그는 ‘강철중: 공공의 적 1-1’(2008년) ‘이끼’(2010년) 같은 작품에서의 강한 캐릭터들로 기억된다. ‘눈빛이 강하다’고 하니 “눈썹이 없어서 이거라도…”라고 했다. “센 캐릭터로 나온 영화들이 흥행이 잘돼서 그런가 봐요. 여성분들은 ‘나의 결혼 원정기’(2005년) ‘김씨표류기’(2009년)처럼 ‘어리버리한’ 역할을 기억하시던데요.”
인터뷰를 마치며 본인이 잘생겼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제 이름 앞의 수식어가 개성파예요. 평범한 배우 앞에 붙는 그 말…. 연극배우 시절 단역을 뽑는 오디션에도 수없이 떨어졌죠. 떨어지면서 들은 말이 ‘잘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웃기게 생긴 것도 아니고…’였어요. 캐릭터에 녹아들기 좋은 얼굴이라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이 평범한 배우를 여러 감독이 선택했다. 한지민과 호흡을 맞춘 로맨틱 코미디 ‘플랜맨’이 내년 초 개봉하고, 현빈과 함께 나오는 사극 ‘역린’도 촬영 중이다. 그의 평범함에는 어떤 비범함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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