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사’안에 아다치 미쓰루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9일 03시 00분


스포츠 소재 만화로 1990년대 인기… 극 진행방식-인물 스타일 닮아
신원호 PD 등 당시 10, 20대 독자들 현재 30, 40대로 주시청층 형성

1990년대 소년 만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아다치 미쓰루의 ‘H2’. 동아일보DB
1990년대 소년 만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아다치 미쓰루의 ‘H2’. 동아일보DB
《 “‘응사’ 안에 아다치 미쓰루 있다.” 요즘 인터넷에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응사)와 전작인 ‘응답하라 1997’(응칠)을 일본 만화가 아다치 미쓰루의 작품과 비교한 게시물이 많이 올라온다. 아다치는 ‘H2’ ‘터치’ ‘러프’ ‘크로스 게임’ 같은 스포츠 만화로 1990년대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일본 만화가. 사춘기 소년들의 우정과 사랑에 대한 묘사가 섬세해 ‘소년용 순정만화’로 불린다. 1990년대 아다치의 작품을 즐겨 보던 10대와 20대는 요즘 ‘응사’를 즐겨 보는 주요 시청자이기도 하다. 》

아다치 만화에는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남녀가 커가면서 첫사랑을 느끼고, 남자 주인공은 성격도 좋고 유능하며, 주인공에게는 죽은 형제가 있다는 설정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모두 ‘응사’와 ‘응칠’에 나오는 설정들이다.

아다치 코드1-소꿉친구 ‘응사’의 나정(오른쪽)은 스킨십을 스스럼없이 할 정도로 친남매처럼 지내온 쓰레기에게 사랑을 느낀다.
아다치 코드1-소꿉친구 ‘응사’의 나정(오른쪽)은 스킨십을 스스럼없이 할 정도로 친남매처럼 지내온 쓰레기에게 사랑을 느낀다.
‘응사’의 나정(고아라)과 쓰레기(정우)는 오래전부터 집안끼리 아는 사이다. 대학생이 돼서는 같은 집에서 살면서 신체 접촉도 거리낌 없이 한다. 나정은 친오빠 같은 쓰레기에게 사랑을 느낀다. 나정에겐 일찍 세상을 뜬 오빠가 있다. 수석을 놓친 적 없는 의대생 쓰레기는 ‘허당’ 기질이 다분하면서도 속 깊은 인물이다.

아다치 코드2-죽은 형제 나정에겐 먼저 세상을 뜬 오빠가 있다. 죽은 가족은 극의 아련함을 더하는 효과를 준다.
아다치 코드2-죽은 형제 나정에겐 먼저 세상을 뜬 오빠가 있다. 죽은 가족은 극의 아련함을 더하는 효과를 준다.
‘응칠’의 주인공 시원(정은지)과 윤제(서인국)는 소꿉친구였으며 삼각관계를 이뤘던 윤제의 형 태웅(송종호)은 원래 세상을 뜬 시원 언니의 연인이었다. 성격 좋은 윤제와 태웅은 커서 검사와 대선후보가 된다.

아다치의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되는 야구는 ‘응사’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나정을 두고 쓰레기와 경쟁을 벌이는 칠봉(유연석)은 야구선수이며 그는 아다치 작품 속 주인공들처럼 변화구보다는 직구, 정면승부를 선호한다.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쓰는 동작은 중요한 순간이나 격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나정은 오빠의 기일(忌日)에, 그리고 쓰레기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 평소와 달리 모자를 눌러쓰고 등장한다.

아다치 코드3-감정 절제 ‘응사’ 속 인물들은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대신에 상징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오빠의 기일에 나정은 눈물을 보이는 대신 야구 모자를 눌러쓴다.
아다치 코드3-감정 절제 ‘응사’ 속 인물들은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대신에 상징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오빠의 기일에 나정은 눈물을 보이는 대신 야구 모자를 눌러쓴다.
등장인물들은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출하기보다는 은밀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악역이 없고, 서로 경쟁하지만 관계가 틀어지지 않는 점도 만화와 드라마의 공통점이다. 한창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아다치 만화에서는 남자 주인공들이 삼각관계에 빠지더라도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덕분에 끝까지 우정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응답하라…’란 제목이 ‘러프’의 마지막 대사(“당신을 좋아합니다.…응답하라. 오버!”)에서 비롯됐다는 설, ‘응칠’에 자주 나오는 델리스파이스의 노래 ‘고백’은 아다치에 대한 제작진의 오마주(존경의 표시)라는 해석도 있다. ‘고백’은 델리스파이스 멤버인 김민규가 아다치의 대표작 ‘H2’를 모티브로 만든 노래다.

‘응사’와 ‘응칠’의 신원호 PD는 “아다치 작품을 참고한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 속 첫사랑의 감정이 아다치 작품의 정서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1990년대를 보내면서 쌓아온 정서를 드라마에 담다 보니 당시 인기를 끈 아다치 작품과 닮아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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