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좋은 영화에 주어지는 상이 많다. 심오한 작품성과 연기를 인정하는 상들을 보며 관객은 지나온 영화를 떠올린다. 하지만 거대한 메시지와 명장면 이외에 사소하지만 재미있던 것, 어이없는 실수가 때론 더 오래 기억될 때가 있다. 올해 한국 영화 170여 편, 외국 영화 450여 편이 스크린에서 관객과 울고 웃었다. 동아일보 영화팀 두 기자가 작지만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을 떠올리며 ‘내 맘대로 영화상’을 선정했다.
○ 장면들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키스신 모음은 얼마나 황홀한가. 하지만 올해는 기억에 남는 키스신이 없다. 히트한 멜로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박수건달’의 박신양과 조진웅에게 ‘키스상’을 수여한다. 검사인 조진웅은 조폭 무당인 박신양의 몸에 죽은 애인의 영혼이 들어오자 달려들어 키스를 나눈다. 웃기고도 슬픈 ‘남남(男男) 키스’다.
베드신은 ‘영화의 꽃’이지만 인상적인 장면이 없다. 당선작 없음. 오히려 어이없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반창꼬’에서 한효주는 고수와 호텔방에 들어가면서 베드신을 암시하지만 다음 장면에선 갑자기 옷을 다 입고 나온다. ‘야관문: 욕망의 꽃’에는 기대와 달리 신성일과 배슬기의 베드신이 없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말런 브랜도와 마리아 슈나이더처럼 나이를 초월한 끈적함을 기대했던 것은 무리였을까?
범죄스릴러 영화의 재미는 범인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숨바꼭질’은 범인을 너무 빨리 들켜버린다. 눈썰미 있는 관객이라면 헬멧 쓴 남자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뒷머리가 삐져나온 걸 알 수 있다. “여자구나.” 영화에 등장하는 여자라고는 문정희와 전미선 뿐. 답이 뻔하다. ‘올해의 삑사리’다.
○ 캐릭터와 연기
‘목소리상’은 ‘그래비티’의 조지 클루니. 클루니의 섹시한 목소리가 들리자 망망대해 같은 우주를 떠돌던 샌드라 불럭은 정신을 바짝 차린다. 클루니의 몸은 우주복으로 꽁꽁 싸였지만 목소리만으로 충분히 섹시하다.
여자 관객의 사소한 관심을 받았던 배우는 ‘월드워Z’ 브래드 피트. 큰 소리 내면 좀비들이 달려드는 급박한 상황에서 걸려온 아내의 전화에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응대한다. “저런 남편 어디 없나.” ‘베를린’에서 아내를 위해 목숨을 건 하정우를 제치고 ‘남편상’ 수상자로.
‘그때그때 달라요상’에는 이정재. ‘신세계’의 소심한 이자성 역에서 ‘관상’의 포악한 수양대군 역으로 대변신했다. 연기력 논란도 잠재웠다.
‘결혼전야’의 우즈베키스탄 여성 구잘과 마동석 커플에게는 ‘다문화상’을 준다. 결혼 전 우울증인 ‘매리지 블루’에 걸려 ‘작동’이 안 되는 마동석을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구잘의 의리에 높은 점수를 준다.
‘발연기’보다도 못한 ‘발바닥 연기상’은 ‘퍼시픽 림’의 일본 여배우 기쿠치 린코가 차지했다. 남자 주인공과 함께 거대 로봇에 올라 괴물 카이주와 싸워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쿠치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일을 망칠 뻔했다. 남성들이 열광하는 이 영화와 그의 연기가 결이 안 맞는다.
올해는 간첩 영화가 많았다. ‘베를린’ ‘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 ‘용의자’ 네 편 중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김수현에게 ‘간첩상’을 준다. 원작 만화에 등장한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멋지게 소화해낸 공로를 인정해서.
○ 작품성, 소품과 의상
건질 게 없었던 작품에 주는 ‘증류수상’에는 손예진 김갑수 주연의 ‘공범’을 꼽는다. 손예진은 아버지인 김갑수가 유괴범이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는데 결국 예상대로다. 반전도 트릭도 없는 어이없는 스릴러 영화.
‘흥행보증 수표’ 김용화 감독이 연출하고 제작비를 200억 원 넘게 쓴 ‘미스터 고’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린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상’을 받았다. ‘엑스맨’ 시리즈에서 독립해 솔로로 출연한 휴 잭맨의 ‘울버린’은 지나친 왜색(倭色)으로 한국 관객이 외면했다. 지못미상 공동 수상.
‘식품상’은 ‘설국열차’의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바에게 돌아갔다. ‘설국열차’ 하면 양갱을 닮은 단백질 바가 떠오른다. ‘의상상’에는 ‘맨 오브 스틸’의 슈퍼맨이 입은 보르네오 산 생고무로 만든 듯한 생생한 질감의 슈트가, ‘포스터상’에는 조선희 작가가 촬영한 화려한 배우들의 얼굴만으로 영화에 기대감을 극대화한 ‘관상’이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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