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재우고 테레비]찬란한 청춘 스케치… 과연 그게 전부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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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 28일 종영

나는 1990년대 초반 대학가에 대한 환상이 있다. 당시 10대였던 내가 즐겨 봤던 드라마 중에는 MBC ‘우리들의 천국’(장동건을 배출한!), KBS ‘내일은 사랑’(이병헌을 낳은!)과 ‘사랑의 인사’(배용준이 데뷔한!) 등 그 시절 대학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았다.

확실히 90년대 대학생 오빠들은 그 이전 세대 오빠들과 다른 뭔가가 있었다. 더 세련됐고, 덜 정치적이었고, 그럼에도 배운 티가 났다고나 할까. 흰 티에 폴로셔츠를 받쳐 입고 하루키의 책이나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영화를 보며 PC통신으로 소통하는 세계는 꽤 근사해 보였다. ‘응사’(응답하라 1994)를 보며 그 시절 그 오빠들을 떠올렸다.

94학번인 한 선배는 ‘응사’의 안티였다.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90년대는 드라마와 달랐다”고 했다. 그는 또 “추억 없는 메마른 사람으로 보일까봐 침묵할 뿐 그 시기 20대를 보낸 사람 중에서 응사가 못마땅한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그 말이 사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대학진학률이 80% 가까이 되지만 1990년대 초반에는 30∼40%에 불과했다. 이는 당시 20대를 보낸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드라마 같은 대학생활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불어 90년대 초반은 80년대만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정치적으로 삼엄했다. ‘응사’는 그 시절 유행과 소비패턴을 ‘깨알같이’ 재현하지만 대학가에서 벌어진 또 다른 현상은 외면했다. 서울 명문대로 진학한 지방 유지 아들들의 20년 넘는 순수한 우정과 사랑은 로맨스 드라마 속 ‘실장님’과의 사랑 못지않게 판타지 같은 면이 있다. 그 덕분인지 ‘응사’ 속 대학생들은 밝아도 너무 밝았다.

물론 모든 드라마가 정색하고 심각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응사’는 다수가 공감할 만한 ‘보편적 정서’를 담았고, 그것만으로도 좋거나 또는 영리한 드라마다. 다만 90년대에 대한 ‘팬시한’ 포장은 마음에 걸린다. 이는 ‘응사’뿐 아니라 최근 90년대를 배경으로 봇물처럼 등장한 드라마와 영화 모두에 해당한다. 지나간 추억은 아름답다지만 반성해야 할 치부와 허물까지도 아름답게만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불편하다.

90년대의 동경했던 그 대학생 오빠들은 이제 대부분 40대의 배 나온 아저씨가 됐다. 심지어 장동건 이병헌 배용준도 늙었다. 누군가의 추억 고백은 때로 애틋하지만 자주 하면 질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자기 과거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사람은 좀 덜 성숙해 보이기도 한다.

응사는 28일 끝난다. 남편이 누구인지와 별개로 나정과 그 친구들이 지금 행복하고 유쾌하면 좋겠다. 현재를 살고 있는 그들이 과거 결혼식 비디오나 보면서 추억 타령만 하고 있진 않길 바란다. 그건 너무 ‘꼰대’ 같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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