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상한 그녀’ 일반 시사회장. 연출을 맡은 황동혁 감독이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며 “전 작품에서 ‘도가니’를 찍었다”고 하자 객석에서 “정말이야?” “저 사람이 ‘도가니’를 찍었다고?”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럴 만도 하다. 3년 전, ‘도가니’로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트리며 큰 반향을 일으킨 연출자가 전혀 다른 작품으로 무대에 섰으니 말이다.
“관객들이 적잖이 놀라시더군요. 하하! 하긴 전 작품이 너무 어둡긴 했죠. 당시 ‘도가니’를 보고 충격을 받은 관객이 영화관에서 구급차를 부르기도 했으니까요. 대부분 관객들은 사온 팝콘을 먹지도 못하고 그대로 갖다버리셨대요.”
마음이 아팠던 것은 황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도가니’를 촬영한 후 몸도 마음도 쇠약해졌다. 하루 빨리 극복할 만한 것을 찾고 있었고, 그 무렵 ‘수상한 그녀’의 시나리오가 손에 들어왔다.
“다음 작품에서는 관객들이 즐겁게 팝콘과 콜라를 먹으며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마침 ‘수상한 그녀’의 시나리오를 보고 마음에 쏙 들었어요. 누구나 즐기고 볼 수 있는 작품이 되겠다 싶어 영화로 만들었죠.”
‘수상한 그녀’는 칠순 할머니 오말순(나문희)이 ‘청춘사진관’에서 영정사진을 찍고 난 후 처녀시절의 모습으로 변하게 되며 다시 자신의 젊었을 적 전성기를 누리는 이야기이다. 주름진 얼굴에서 탱탱한 얼굴로, 할머니가 처녀가 된다는 다소 황당하고 판타지적인 요소의 영화지만, 현실감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관계나 세월의 흐름, 그리고 노인문제 등을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저는 할머니와 어머니 밑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고부관계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보고 느끼며 컸어요. 특히 할머니께서 주무실 때 틀니를 물 컵에 넣어두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영화에 넣었죠. 나이를 먹는다는 게 서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지만 누구나 겪는 거고, 또 겪을 일이잖아요. 어떻게 하면 시간을 지혜롭게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할만한 영화죠.”
황 감독은 이 영화를 보며 현격히 벌어진 세대간의 격차가 좁아지길 바란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말순의 아들이자 교수인 반현철의 강의시간에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노인’이라는 주제도 이 때문에 넣기도 했다.
“할머니의 고왔던 시절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어요. 정말 예쁘다고 느끼면서 할머니도 젊은 시절이 있었고, 나도 언젠간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며 늙어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서로 상대방을 생각해주고 이해의 폭을 좁힌다면 편견과 선입견도 줄어들지 않을까요?”
영화에서 누구보다 돋보이는 것은 배우 심은경이다. 심은경은 구성진 사투리와 70대의 할머니 연기를 코믹하고 섬세하게 해낸다. 극을 주도하고 이끌어나가는 면도 눈길을 끈다. 초고에는 오두리의 이미지가 어른스럽고 섹시한 여성이었지만 각색을 하며 점점 연기력이 요구되는 배우가 필요했다. 황 감독은 단박에 ‘심은경’을 생각했다.
“(심)은경이 밖에 안 떠오르더라고요. ‘써니’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며 코믹하고 진정성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로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은경이가 주인공을 해본 적이 없어 반대의 의견도 있었죠. 하지만 연기력으로 승부를 걸어보자고 했고 좋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아요.”
심은경의 연기가 눈을 즐겁게 한다면 영화의 삽입곡은 귀를 즐겁게 한다. ‘수상한 그녀’는 1980~90년대의 추억의 고전명곡인 ‘나성에 가면’ ‘하얀 나비’ 그리고 ‘빗물’까지 중장년층과 젊은 층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가요로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오말순이 보낸 세월과 그 시간동안 느낀 감성과 잘 어울리는 곡조와 가사들을 찾았어요. 대사를 삭제하더라도 음악으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골랐죠. 또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도록 옛날 곡이라는 느낌을 거의 안 나게 요즘 음악처럼 편곡했어요.”
오말순이 20세 오두리로 변했던 것처럼 황 감독은 20대로 돌아간다면 음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장르를 불문하고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그는 “요즘 작곡·작사를 해보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창작은 즐거운 작업인 거 같아요. 그런데 영화는 많은 자본과 사람이 필요해서 받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은 반면, 음악은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즉각적인 반응이 오잖아요. 거기에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음악을 만든다는 것에 머리를 쥐어짜내는 고통이 필요하지만요.”
황 감독은 당분간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TV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의 애청자이기도 한 그는 요즘 한창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기왕후’ 본방사수 중이다. 가끔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며 감각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려고 한다.
“올 여름쯤에 다음 작품을 생각해보려고요. SF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은데…. 하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다양한 장르를 해보려 합니다. 제가 연출가로서 지키고자 하는 바요? 진심이죠. 작품이 어떤 내용이든 내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성이 담긴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것만큼은 꼭 지키고 싶네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