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지질한 캐릭터들의 조물주’라고 해야 할까. 20일 개봉하는 ‘아메리칸 허슬’의 데이비드 러셀 감독 말이다. ‘파이터’(2010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년)에서 가망 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유쾌한 인생 전복을 보여준 러셀 감독이 이번에도 장기를 발휘했다. 세상에는 잘난 이보다 못난 이가 많아서인지 영화의 공감지수가 높다.
‘허슬(hustle·활발하게 움직이다)’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한없이 설쳐대는 영화. 시작과 함께 다음과 같은 자막이 뜬다. ‘영화의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앱스캠 스캔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아랍 사업가로 위장한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연방 의원과 공직자의 비리를 적발하기 위해 함정수사를 벌인 사건이다.
희대의 사기꾼 어빙(크리스천 베일)은 내연녀이자 동업자인 시드니(에이미 애덤스)와 한탕 잡을 사업을 벌인다. 욕심 많은 FBI 수사관 디마소(브래들리 쿠퍼)가 찾아와 범죄를 눈감아 줄 테니 다른 수사에 협조하라고 협박한다. 세 사람은 일당이 돼 카민 시장(제러미 레너)이 개발사업과 관련해 뇌물을 받도록 유도한다. 손발이 착착 맞는 세 사람은 연방 의원까지 낚으려고 더 큰 음모를 짠다.
‘러셀 사단’이 된 배우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파이터’에서 마약에 찌든 어수룩한 복싱 트레이너로 나왔던 크리스천 베일은 이번에는 올챙이배가 될 만큼 살을 찌우고 대머리로 분장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으로 지난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제니퍼 로런스가 그의 부인으로 나온다. ‘골빈당 당수’ 같은 캐릭터가 이번에도 한없이 매력적이다. 이들이 쏟아내는 맛난 대사와 엉뚱한 유머를 듣다보면 긴 상영시간(138분)이 훅 지나간다.
러셀 영화의 매력은 지질한 캐릭터들의 몸 개그와 말 개그로 훈훈한 결말을 빚어내는 연금술에 있다. 내내 키득키득 웃다가도 달달한 뒷맛이 오래간다. 미국판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라고 하면 느낌이 금방 올 것 같다. 올해 아카데미상 최다(10개 부문) 노미네이트 작품. 18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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