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다음 주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2009년 ‘아바타’ 이후 5년 만의 1000만 외화다. 지난달에는 ‘변호인’이 1000만 관객을 넘었다. 한 달 새 1000만 영화가 두 편 나오는 셈이다. ‘겨울왕국’이 기록을 달성한다면 2012년 여름 ‘도둑들’이 1000만 관객을 넘은 이후 1년 반 사이에 1000만 영화가 4편(‘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7번방의 선물’ ‘겨울왕국’)이 나온다. 첫 1000만 영화인 2004년 ‘실미도’ 이후 11편의 1000만 영화 중 4편이 이 기간에 몰려 있다.
이런 호황을 반기는 목소리가 크지만 전문가들은 영화 소비의 쏠림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다양한 영화 관람을 통해 문화소비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쏠림 현상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대형 상업영화와 대비되는 다양성영화(예술, 저예산, 독립영화) 시장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전국 극장 관객 수에서 다양성영화를 본 관객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9년 6.6%에서 2013년 1.6%로 해마다 줄고 있다.
외국과 비교해도 편식 현상은 두드러진다. 지난해 한국 전체 극장 매출에서 상위 10위의 흥행 영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35%에 달했다. 반면 미국은 24%, 일본은 29%, 영국은 30%였다. 프랑스와 독일의 경우 전체 영화 관객 중 상위 10위 관객의 비율이 각각 26%와 24%에 불과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관객이 틀렸다”는 주장이 나온다. 취향과 관점 없이 남들이 보는 영화만 찾는 소비 습관이 문제라는 것이다. 2012년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소비자조사’에 따르면 ‘영화를 고를 때 주변인의 평가를 고려한다’는 응답이 71.2%에 달했다.
서우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영화 같은 체험 제품은 상품의 가치 판단이 어렵기 때문에 잘 팔리는 상품을 고르는 경향이 강하다. 쏠림 현상은 결과적으로 선택권을 제한해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친다”고 했다. 서 교수는 인터넷의 발달이 문화 소비의 쏠림 현상을 강화했다고 덧붙였다.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시장 독과점도 쏠림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멀티플렉스는 돈 되는 영화, 모그룹의 계열사가 제작한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줘 선택의 여지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현재 전국 2184개 스크린 중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3대 멀티플렉스의 비율은 94.9%(2072개)다.
관객의 ‘편식’ 습관을 고칠 수 있을까. 곽영진 영화평론가는 “영화는 오락이면서 동시에 현대의 대표적인 예술이다. 미술과 음악을 가르치듯이 학교에서 영화 보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프랑스에서는 고교 1학년 정규 교과과정에 주당 3시간의 영화와 시청각 선택과목을 편성해 각국의 고전 영화를 감상하고 토론한다. 독일도 고교에서 예술 강사를 파견해 정규 교육의 보충 프로그램으로 영화를 가르친다.
반론도 만만찮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쏠림 현상이 있지만 한국 관객의 수준은 이전보다 높아졌다. ‘도가니’와 ‘설국열차’ 같은 사회성 있는 영화를 외국에서는 수백만 관객이 보지 않는다”며 “평단과 관객의 괴리는 이전보다 좁혀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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