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깡패’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처음 쓰이기 시작했을 때는 주로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보다 혜택을 입는 사례에서 ‘나이가 벼슬’의 유사어로 사용됐다. 그러나 요즘은 ‘한 미모’ 했던 여자 연예인이 나이 들어 예전만 못할 때 자주 쓰인다. 예컨대 30대 중반을 넘어선 이효리와 20대 중반인 ‘소녀시대’ 효연이 함께 있는 사진 아래 감상평으로 쓰는 식이다(이효리 씨, 그래도 그대가 최고).
어릴 때부터 노안이던 탓에 ‘나이 든다고 얼마나 달라지겠어’ 했던 나도 최근 짙어지는 팔자주름과 눈 밑 꺼짐, 볼 파임 등등을 경험하며 노화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27일 종영한 SBS ‘별에서 온 그대’에서 400세 외계인 도민준(김수현)의 초능력 중 눈에 들어온 건 그가 자랑했던 ‘시간을 멈추는’ 기술이 아니라 ‘불로장생’ 특질이었다. 영원한 삶을 원치 않으나(물론 한국인 평균수명은 지키고 싶다) ‘안티 에이징’ 체질만은 진심으로 부러웠다.
이런 생각은 영화 ‘수상한 그녀’를 보면서도 이어졌다. 이 영화에서 내가 얻은 교훈이란, 외모만 젊고 아름답다면 ‘할머니 애티튜드’도 괜찮다는 사실이다. 되레 그런 태도는 ‘빈티지’한 매력으로 부각될 수도 있다. 차를 즐기며 고서를 읽고 “버티고개 앉을 놈들” 같은 조선욕을 쓰는 도민준은 얼마나 우아하고 품위 있나.
한동안 남녀의 몸이 바뀌거나, 먼 과거에서 현재로 혹은 그 반대로 시간을 건너뛰는 ‘타임슬립’류의 이야기가 유행했다. ‘별에서 온 그대’와 ‘수상한 그녀’는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 두 작품의 주인공은 오롯이 긴 인생을 살아 지혜로우면서도 늙지 않거나 ‘급격한 회춘’을 경험한다. ‘안티 에이징’에 목마른 관객은 이 작품들을 보며 ‘우리도 몸만 젊다면 저들처럼 한 인기 할 텐데’라고 생각하며 대리만족을 느낄지도 모른다(아니면 말고). 비록 김수현이나 심은경 같은 미모는 못 되더라도 살아 있는 동안 20대의 아름다운 몸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인생의 질은 달라질 것이다. 연애의 폭도 넓어질 듯하다. 아마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배회하는 종로 탑골공원이 홍대 앞 클럽 못지않은 ‘핫 플레이스’가 되지 않을까. 그냥 입맛 다시며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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