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변하니 아카데미도 변했다. 흑인의 시선으로 노예제를 그린 영화 ‘노예 12년’은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칼라퍼플’(1985년)은 아카데미 11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지만 단 하나의 상도 받지 못해 논란이 됐다. 동아일보DB
가히 ‘블랙 할리우드’라고 할 만하다. 흑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줄을 잇더니 마침내 흑인 감독 스티브 매퀸의 영화 ‘노예 12년’이 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새로운 흑인 감독과 배우들의 활동도 활발해졌다.
최근 6개월 사이 국내 개봉작만 봐도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27일 개봉한 ‘노예 12년’을 비롯해 백악관 흑인 집사의 이야기인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지난해 11월 개봉), 흑인 청년을 과잉 진압한 사건을 다룬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1월 개봉) 모두 흑인 감독이 흑인 주인공을 등장시켜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 영화다.
올해는 미국에서 공공장소 내 인종차별을 금지한 ‘민권법’이 만들어진 지 50주년 되는 해다. 지난해에는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연설로 유명한 워싱턴 평화대행진의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최근 흑인 영화 증가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흑인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만큼 달라진 사회상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할리우드 제작사 미라맥스의 공동창립자이자 유명 배급사인 웨인스타인컴퍼니 대표인 하비 웨인스타인은 지난해 미국 연예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경향을 ‘오바마 효과’라고 표현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예전에는 흑인 배우에게 구색 맞추기 식 배역을 맡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주인공으로 내세워 흑인의 삶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는 작품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위쪽부터 백악관 흑인 집사의 실화를 그린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 2009년 흑인 청년 과잉 진압 사건을 다룬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흑인 대통령이 등장한 영화 ‘화이트 하우스 다운’, 원작과 달리 흑인 주인공을 등장시킨 ‘장고: 분노의 추적자’. 동아일보DB요즘 인종 문제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 중엔 실화를 바탕으로 흑인 시각에서 인종차별의 역사를 바라보는 작품이 많다. ‘노예 12년’은 남북전쟁 이전의 노예제, ‘버틀러…’는 1950∼1980년대 흑인 인권운동, ‘오스카 그랜트…’는 2009년의 인종차별 사건을 다뤘다.
이들 영화에서는 흑인을 돕는 백인도 부각되지 않는다. ‘노예 12년’에서는 캐나다인 베스가 주인공을 돕긴 하지만 그 분량은 미미하다. 입양한 흑인 아들을 훌륭한 미식축구 선수로 키워낸 백인 어머니의 실화를 다룬 ‘블라인드 사이드’(2009년 제작)나 고난을 극복한 흑인 주인공 못지않게 백인 조력자가 부각된 ‘맨 오브 오너’(2000년) 같은 기존의 흑인 영화와의 차별점이다.
그렇다고 흑인을 ‘절대선’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노예 12년’의 주인공은 자유인이던 시절엔 노예 신분인 흑인과 선을 긋고 살았다. ‘버틀러’는 흑백차별을 바라보는 흑인 부자(父子)의 시각차를 부각시켰다. ‘오스카 그랜트…’에서는 주인공을 죽음으로 모는 백인 경찰을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영화 칼럼니스트 김치완 씨는 “흑백 갈등을 선악 대결로 보려는 교조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요즘 흑인영화는 진일보했다”고 말했다.
‘화이트 하우스 다운’(2013년)처럼 흑인 대통령이 늘고, 원작과 달리 주인공을 흑인으로 바꾼 리메이크작이 증가한 것도 특징이다. ‘장고’(1966년)를 리메이크한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년) 주인공은 제이미 폭스였으며, 1980년대 인기 TV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영화 ‘더 이퀄라이저’(올 상반기 개봉 예정) 역시 원작의 백인 주인공 역을 덴절 워싱턴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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