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샘 기자의 고양이끼고 드라마]보수화된 일본 “독한 드라마 더 못 참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9일 03시 00분


일드 ‘내일, 엄마가 없어’

“여기 있는 너희들은 애완동물 가게의 강아지나 마찬가지다. 애완동물의 행복은 주인에 의해 결정된다. 주인은 애완동물을 어떻게 고르지? 귀여움을 보고 고르는 거야.”

지난주 종영한 일본 드라마 ‘내일, 엄마가 없어’의 첫 회. 지팡이를 짚고 보육원 ‘물오리의 집’ 아침식사 시간에 나타난 원장이 보육원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원장은 아이들에게 재롱을 피워보라고 한 뒤, 여기서 합격한 아이들만 먼저 식사를 하도록 허락한다. 드라마 1, 2회에는 “이런 불경기에 주워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고맙게 생각해” “넌 귀여운 토이푸들이야. 손이라도 내밀어 봐” 같은 대사가 쏟아지고. 아이들은 서로를 ‘포스트’(우체통에 버려진 아이) ‘로커’(코인로커에 버려진 아이) 등으로 부른다.

이런 설정에 불편을 느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는지 일본에서는 드라마 시작 직후부터 비난 여론이 터져 나오면서 광고가 보류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2회부터는 드라마 말미에 ‘이 드라마는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는 관계가 없다’는 안내가 붙더니 결국에는 줄거리가 적지 않게 수정됐다.

하지만 이런 논란에는 석연찮은 면이 많다. 극본을 감수한 노지마 신지는 드라마 초반에 거부감을 일으키는 ‘충격요법’을 쓴 뒤 극적인 반전을 통해 감동을 주는 작가로 유명하다. 일본에서 이런 식의 ‘독한 설정’이 처음 나온 것도 아니다. 2010년 드라마 ‘마더’에서 추운 겨울에 친엄마가 쓰레기봉투에 아이를 넣어 집 밖에 버리는 장면이 나왔고, 2005년 ‘여왕의 교실’에선 초등학생들을 혹독하게 공부시키고 현실을 알라며 독설을 퍼붓는 담임교사가 등장했다. 하지만 당시엔 드라마 광고가 보류되고 줄거리가 수정되는 사태로까지 번지지 않았다.

‘내일, 엄마가 없어’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시설 아동의 현실이나 입양 시스템, 진정한 가족의 의미 등에 대해 꽤 괜찮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일단 보기 불편하니 눈앞에서 치우라’며 불편해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반론도 있었지만 비난 여론을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런 일련의 소동은 일본 사회가 ‘불편함’에 대해 예전보다 훨씬 더 강퍅해졌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문득, 국가와 정부를 불편하게 하는 비밀 누설은 무엇이든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특정비밀보호법’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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