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샘 기자의 고양이끼고 드라마]브루클린 거리 ‘젊은날의 초상’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6일 03시 00분


‘섹스 앤드 더 시티’ 블랙버전 ‘걸스’

미드 ‘걸스’의 주인공 해나로 나오는 레나 더넘은 각본과 감독까지 1인 3역을 소화했다. 미국 HBO TV 화면 캡처
미드 ‘걸스’의 주인공 해나로 나오는 레나 더넘은 각본과 감독까지 1인 3역을 소화했다. 미국 HBO TV 화면 캡처
배경은 미국 뉴욕, 여자 4명이 등장한다.

이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섹스 앤드 더 시티’가 떠오른다. 마지막 시즌 방송이 2004년이니 이미 10년이 지난 드라마인데도 여전히 국내 케이블TV에서 재방송을 볼 수 있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이후 비슷한 드라마들이 나와 그 아성에 도전했지만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시즌3까지 방영된 ‘걸스’ 역시 줄거리만 보면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아류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20대 여자 4명이 나오니 30, 40대가 주인공이었던 섹스 앤드 더 시티의 후배 격이다. 실제로도 걸스는 시즌1 첫 회에서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캐리와 사만다 얘기를 하며 ‘선배’를 의식한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를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빛과 그림자처럼 정반대다. 섹스 앤드 더 시티에 나왔던 화려한 의상과 명품 구두의 향연은 없다. 배경이 맨해튼이 아니라 브루클린인 것부터가 그렇다. 작가 지망생인 주인공 해나(레나 더넘)는 매력적인 캐리와 달리 남자친구에게마저 과체중이라고 놀림 받는 인물. 대학은 나왔지만 전공은 취직에 쓸모가 없고 안정된 직장 없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딱히 책임감이나 열의도 없으니 직장에선 해고당하기 일쑤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당당하지도 않고 그럴 의욕도 없어 보인다. 하긴 매달 월세 걱정을 해야 하는 형편에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이 되는 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해나는 더이상 용돈을 주지 않겠다는 부모에게 왜 경제적으로 지원해주지 않느냐며 지질하게 굴고, 친구들끼리도 서로 도움을 주기는커녕 내 삶이 더 힘들다며 싸우기 일쑤다. 겨우 진지하게 사귀기 시작한 남자친구에게 해나가 “나는 세상에서 제일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연약하고 이기적인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집약한다.

걸스는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세계는 실재하지 않거나 혹은 진흙탕에서 뒹굴어도 겨우 도달할까 말까 한 판타지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또 어설픈 위로를 하거나 너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느냐며 과시하는 대신 세상이 원래 그리 관대하지 않다고 일침을 놓는다.

이상하게도 걸스의 우울한 뉴욕 풍경과 해나와 그 친구들이 일보 전진에 이보 후퇴를 거듭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웃음이 나곤 한다. 아마도 세상이 나한테만 잔인한 건 아닌가 보다 하는 안도감 때문 아닐까.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걸스#섹스앤드더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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