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크린을 달구는 20대 여배우들이다. 이들은 외모보다는 연기력과 개성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래서 ‘김태희과(科)’가 아니라 ‘배두나과’라는 말을 듣는다. 전지현(33) 하지원(36) 손예진(32) 같은 30대 톱 여배우들이 광고나 TV 드라마로 뜬 다음 영화에 도전한 전례를 따르지 않고 영화배우부터 시작한 점도 새롭다.
데뷔작 ‘괴물’(2006년)과 지난해 개봉한 ‘설국열차’에서 송강호의 딸로 나온 고아성은 지난달 개봉한 ‘우아한 거짓말’에서는 왕따를 당해 자살한 학생의 언니 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우아한 거짓말’에서의 연기는 대선배인 김희애에게 뒤지지 않았다”며 “캐릭터를 자기화하는 능력이 뛰어난 배우”라고 평가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드라마보다는 영화에서 탐낼 만한 배우로 4차원적 매력이 배두나를 연상시킨다”며 “생활에 밀착한 느낌의 연기를 한다면 더욱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12년 ‘은교’의 파격 연기로 주목받은 김고은은 지난달 ‘몬스터’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올 하반기 개봉하는 사극 ‘협녀: 칼의 기억’에서는 톱스타 이병헌 전도연과 연기 대결을 벌인다. 정지욱 평론가는 “다른 3명의 배우에 비해 배우로서의 느낌이 좀 약하다”며 “상업영화의 틀을 벗어난다면 더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충식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는 “풋풋한 청순미와 동시에 내재된 고민도 표출할 줄 아는 배우”라고 평가했다.
심은경은 4인방 중 흥행 성적이 단연 최고다. 그가 주인공으로 나온 ‘써니’(2011년)는 736만, 올 초 개봉한 ‘수상한 그녀’는 860만 관객을 모았다. 이유진 영화제작사 집 대표는 “어린 여배우가 할머니 연기를 잘하다니 놀랍다.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다”고 했다. 반면에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장은 “창조적 연기가 강점이지만 이미지가 한정적일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마더’(2009년)와 ‘써니’에서 인상적인 단역으로 나온 천우희는 17일 개봉한 독립영화 ‘한공주’에서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이 영화가 해외 영화제를 휩쓸면서 천우희에 대한 평가도 크게 높아졌다. 강 평론가는 “나를 버리고 배역에 몰입하는 메서드 연기에 능한 배우”라며 “제2의 전도연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젊은 여배우의 등장에 목마른 한국 영화계에서는 이들의 등장이 반갑다. 남자 배우의 경우 김수현 송중기 유아인 등 20대 배우들이 화수분처럼 나오고 있지만 여배우의 경우 30, 40대에 밀려 신인들이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외모로 승부하기보다는 개성과 연기력을 바탕으로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연기를 선보이는 이들의 등장은 남자 감독과 제작자들이 남성 위주의 작품을 쏟아내는 한국 영화계에서 의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신인급 여배우가 원톱으로 나온 ‘수상한 그녀’의 흥행 성적은 놀랍다.
유지나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는 “한국 영화가 여성을 인격체로 그리는 노력이 아직은 부족한 실정이어서 이 같은 미묘한 변화가 반갑다”며 “20대 신예 여배우들이 자기만의 연기 철학을 가진 배우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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