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애 “트로트 30년 가시밭길…그래도 행복하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4월 25일 06시 55분


나미애는 “트로트 가수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직업”이라고 말한다. 트로트 가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미치지 않고서는 하지 못할 일”이라고 조언한다. ‘트로트 엑스’를 통해 30년 무명을 날린 나미애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으니 앞으로 재능을 나누며 살고 싶다”고 했다. 사진제공|엠넷
나미애는 “트로트 가수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직업”이라고 말한다. 트로트 가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미치지 않고서는 하지 못할 일”이라고 조언한다. ‘트로트 엑스’를 통해 30년 무명을 날린 나미애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으니 앞으로 재능을 나누며 살고 싶다”고 했다. 사진제공|엠넷
■ ‘트로트 엑스’ 스타 나미애로 본 트로트 가수의 인생

설 곳이 없어 야간업소서 트로트 시작
가요제 대상 받고도 라이브카페 전전
수입 없을때 바리스타 자격증 따기도
“세대 공감하는 따뜻한 곡 부르고 싶어”


“그러나 행복했다.”

케이블 채널 엠넷 ‘트로트 엑스’로 주목받는 가수 나미애(김규순·49)는 트로트 가수로서 지난 30년 인생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말했다. 그 짧은 소회는 트로트 가수로 걸어온 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러나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흥에 겨우면 남녀노소 누구나 한 소절을 ‘꺾지만’ 트로트는 때로 삼류 문화 취급을 받는다. 나미애의 30년 트로트 인생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트로트 가수의 고단한 실상을 엿볼 수 있다.

독수리표 카세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듣고 자란 나미애는 1984년 작곡가 이호섭을 만나 발성을 배운 후 이듬해 야간업소로 나섰다. 동대문시장에서 산 평범한 무대의상에 노란구두. 어려운 형편에 단벌이었지만 “노래할 수 있어 행복한 날들”이었다. 많게는 하루 13개 업소를 누비기도 했다.

그러나 무대가 야간업소다 보니 애환도 많았다. 이웃의 ‘이상한’ 시선이 매서웠고, 밤낮이 뒤바뀐 생활도 어려웠다. 한 무대에 섰던 하춘화 같은 선배와 비교되는 상대적 빈곤감, 상실감에 마음도 허전했다.

22살이던 1986년엔 첫 앨범을 냈다. 데뷔곡 ‘사랑했던 너’는 당시 차트 톱10에 올랐다. 그러나 박남정 김완선 소방차 등 댄스가수들이 잇달아 데뷔하면서 댄스열풍이 일었다. 대중에게 트로트는 관심 밖의 장르였다. 절치부심 끝에 1990년 2집을 냈지만 이번에도 듀스, 노이즈, 서태지와 아이들로 이어지는 댄스열풍으로 방송가에서 트로트의 입지는 없었다. 주현미 현철 설운도 문희옥은 TV를 무대로 활동했지만, 메이저 틈에 끼는 일은 무척 어려웠다.

나미애는 이름을 알리기 위해 1994년 MBC ‘난영가요제’에 출전했다. ‘사랑은 저멀리’란 노래로 대상을 받았지만 TV는 나미애를 불러주지 않았다.

돈을 벌어야 했던 나미애는 서울 남양주 미사리 라이브 카페에 눈을 돌렸다. 7080가수들이 장악한 시장에서 트로트 가수의 설자리는 없었지만, 나미애는 이미자, 심수봉 노래를 “CD를 틀어놓은 것처럼” 정교하게 불렀고, 다양한 레퍼토리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카바레보다 수입도 많았다.

“대한민국 90%의 트로트 가수는 음반제작사나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없다. 커다란 가방에 CD와 요구르트 넣어 다니며 방송 관계자들에게 인사하면서 기회를 노린다. 우리는 그걸 ‘독립부대’라 부른다.”

나미애는 독립부대로 2006년 6집까지 내고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했다. 2006년 ‘대한민국 트로트 가요대상’에선 늦깎이로 ‘신인상’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출연하는 방송은 트로트 전문 케이블 아이넷이 전부였다. 방송이나 대중의 관심은 ‘아이돌’이었다. 그래도 나미애는 단 한 번도 댄스가수를 선망하지 않았다. 그는 ‘트로트 가수’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트로트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 나미애는 ‘아무나’ 트로트 음반을 내는 현상도 한몫했다고 진단한다. 노래 좀 한다는 아마추어는 ‘나도 음반이나 내볼까’하고 음반을 내고, 컴퓨터로 저렴하게 곡을 만들어 행사하러 다니며 돈을 번다. 시대상을 반영해야 하는 트로트 음악은 일부에겐 값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아이돌은 엄청난 연습을 통해 탄생하는데, 일부는 트로트를 너무 쉽게 안다.”

나미애는 ‘트로트 엑스’에서 김추자의 ‘님은 먼곳에’를 처연하게 불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30년 무명을 한 번에 날렸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그의 무대는 감동이었다.

옛 노래만 듣고도 그 시절을 짐작할 수 있는 건, 트로트가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음악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 노래”는 그 순간의 노래이지만, 트로트는 삶이 한편의 노래로 표현된다. 그래서 가보지 못한 그 시절을 알게 된다.

“아이돌 음악은 즐거움으로 귀에 남지만 향수가 없다. 트로트에는 고향이 있고 정서도 따뜻하다. 세대가 공감하는 노래는 우리 시대도 따뜻하게 만들지 않을까.”

나미애는 “트로트 가수 중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참 많다”고 한다. 신인에게 밀리고, 댄스음악에 밀리고, 이름은 알려져 어디 가서 다른 일도 못하고,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미애도 수입이 없던 시절, “굶어 죽을 수 없어” 고용노동부를 통해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했다. 그러나 사회는 자격증보다 나이와 외모를 따졌다.

“평범한 직장인 보면서, 저 사람들이 행복한데, 나는 왜 노래를 시작해서 이것도 저것도 못하고, 그냥 보통여자로 살걸, 후회도 했다. 돌아보면 참 나의 트로트 가수의 인생은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행복했다. 다시 태어나도 트로트를 할 것 같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트위터@ziod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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