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기차를 타고 부산에 다녀왔다. 세 살배기 우리집 ‘떼쟁이’ 씨(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실명은 밝히지 않겠다)는 귀경길에서 울산쯤 왔을 때부터 ‘과자를 달라’ ‘돌아다니게 해 달라’며 칭얼대기 시작하더니 대전쯤 와서 폭발했다. 그는 달리는 기차에서 ‘밖으로 나가겠다’며 소리를 지르고 행패(!)를 부렸다.
당황한 그의 부모(그러니까 나와 남편)는 그를 끄집어내(?) 객실 사이 기차간으로 옮겼지만 상황은 더 악화됐다. 눈물콧물 범벅이 된 떼쟁이는 곧 실신할 만큼 악을 쓰며 통곡을 했다. 양쪽 객실 승객들의 눈이 우리에게 집중된 것은 물론이다(왜 객실 사이는 방음이 안 되는 것인가…). 떼쟁이는 광명쯤에 와서야 겨우 진정이 됐고 목적지인 서울역에 도착해서는 무책임하게도 잠들었다. 아이를 안고 도망치듯 기차를 빠져나온 나는 돌아오는 길 스마트폰으로 ‘공공장소에서 떼쓰는 아이 달래기’ 같은 글을 폭풍 검색했다.
아마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장수할 수 있었던 데는 나 같은 경험을 가진 부모가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한 코너로 시작한 이 프로는 2006년부터 독립 편성돼 방영되기 시작했다. 현재 시청률은 4% 안팎이지만 9년째 장수하고 있다. 평일 오후 5시대 방송 시간과 낮은 제작비를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사실 아이가 없던 시절에도 종종 집에서 이 프로를 봤지만 최근 부모 입장에서 다시 본 이 방송은 과거와 다르게 다가왔다. ‘씻기를 거부하는 아이’ ‘제멋대로인 아이’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 등 흔히 본 사례들이었으나 남의 얘기 같지 않았다. 유익한 육아정보와 더불어 ‘내 아이만 막장이 아니었다’는 묘한 위안감 같은 게 느껴졌다고 할까.
특히 이 프로에서 육아 멘토로 나오는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의 카리스마 있는 훈육법을 지켜보다 보면 우리집 아이도 한 번 출연시켜 보고 싶다는 욕구가 불끈 일 정도다. 떼쟁이가 좀 자란 후에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한 부모와 방송사를 상대로 고소할 위험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그러고 보니, 남의 사생활을 즐겨 본 시청자로서 출연 유아·어린이 여러분께 좀 죄송하다.)
물론 이상과 현실만큼이나 전문가의 조언과 ‘실전 육아’의 차이는 크다. 아이가 떼를 쓸 때는 ‘조용한 곳으로 가 일관성을 갖고 단호하게 대처하라’는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으면서도 아이가 다시 기차간에서 우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나는 또다시 절절맬 것 같기 때문이다.(기차간에는 인적이 드문 곳이 없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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