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재우고 테레비]내 자식만 ‘막장’이 아니었구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7일 03시 00분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최근 아이의 극적인 변화보다는 훈육 방법에 포커스를 둔다. SBS 제공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최근 아이의 극적인 변화보다는 훈육 방법에 포커스를 둔다. SBS 제공
얼마 전 지인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기차를 타고 부산에 다녀왔다. 세 살배기 우리집 ‘떼쟁이’ 씨(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실명은 밝히지 않겠다)는 귀경길에서 울산쯤 왔을 때부터 ‘과자를 달라’ ‘돌아다니게 해 달라’며 칭얼대기 시작하더니 대전쯤 와서 폭발했다. 그는 달리는 기차에서 ‘밖으로 나가겠다’며 소리를 지르고 행패(!)를 부렸다.

당황한 그의 부모(그러니까 나와 남편)는 그를 끄집어내(?) 객실 사이 기차간으로 옮겼지만 상황은 더 악화됐다. 눈물콧물 범벅이 된 떼쟁이는 곧 실신할 만큼 악을 쓰며 통곡을 했다. 양쪽 객실 승객들의 눈이 우리에게 집중된 것은 물론이다(왜 객실 사이는 방음이 안 되는 것인가…). 떼쟁이는 광명쯤에 와서야 겨우 진정이 됐고 목적지인 서울역에 도착해서는 무책임하게도 잠들었다. 아이를 안고 도망치듯 기차를 빠져나온 나는 돌아오는 길 스마트폰으로 ‘공공장소에서 떼쓰는 아이 달래기’ 같은 글을 폭풍 검색했다.

아마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장수할 수 있었던 데는 나 같은 경험을 가진 부모가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한 코너로 시작한 이 프로는 2006년부터 독립 편성돼 방영되기 시작했다. 현재 시청률은 4% 안팎이지만 9년째 장수하고 있다. 평일 오후 5시대 방송 시간과 낮은 제작비를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사실 아이가 없던 시절에도 종종 집에서 이 프로를 봤지만 최근 부모 입장에서 다시 본 이 방송은 과거와 다르게 다가왔다. ‘씻기를 거부하는 아이’ ‘제멋대로인 아이’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 등 흔히 본 사례들이었으나 남의 얘기 같지 않았다. 유익한 육아정보와 더불어 ‘내 아이만 막장이 아니었다’는 묘한 위안감 같은 게 느껴졌다고 할까.

특히 이 프로에서 육아 멘토로 나오는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의 카리스마 있는 훈육법을 지켜보다 보면 우리집 아이도 한 번 출연시켜 보고 싶다는 욕구가 불끈 일 정도다. 떼쟁이가 좀 자란 후에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한 부모와 방송사를 상대로 고소할 위험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그러고 보니, 남의 사생활을 즐겨 본 시청자로서 출연 유아·어린이 여러분께 좀 죄송하다.)

물론 이상과 현실만큼이나 전문가의 조언과 ‘실전 육아’의 차이는 크다. 아이가 떼를 쓸 때는 ‘조용한 곳으로 가 일관성을 갖고 단호하게 대처하라’는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으면서도 아이가 다시 기차간에서 우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나는 또다시 절절맬 것 같기 때문이다.(기차간에는 인적이 드문 곳이 없다고요!)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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