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재우고 테레비]초고화질 화면이 불편한 여배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1일 03시 00분


여배우가 우는 장면을 보는 게 불편해졌다. 분명 울고 있는데 눈썹은 해맑은 표정을 짓는다.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오열 연기를 하면서도 표정은 전반적으로 밋밋해 보기에 민망할 지경이다.

웃을 때도 그렇다. 눈가에 주름이 잡히도록 활짝 웃는 법이 없고, 인중은 아예 마비된 듯하다. 황규석 성형외과 전문의는 “입가 팔자주름을 제거하려고 보톡스를 과하게 주입하다 보면 3개월 정도는 인중 부위까지 마비될 수 있다”고 했다.

오랜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여배우들은 하나같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볼이 빵빵해져서 돌아왔다가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예전의 모습을 회복한다. 얼굴에 주입한 필러가 자연스럽게 되기까지 2, 3개월이 걸리는데 캐스팅은 드라마 촬영 한두 달 전에 결정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여배우의 ‘밀랍인형화’에는 고화질(HD) 방송이 기여(?)한 바가 크다. 2000년대 이후 대중화된 HD방송은 아날로그보다 5배 정도 선명하다고 알려졌지만 배우에게 미친 영향력은 그 이상이다. 드라마에서 주를 이뤘던 바스트 샷(가슴 윗부분을 촬영한 화면), 미디엄 샷(허리 윗부분을 촬영한 화면)이 줄고 얼굴을 크게 잡는 클로즈업 샷이 많아졌다. 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진 반면에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초점을 맞추는 일은 까다로워져 정적이거나 배우의 감정을 부각하는 장면이 늘어난 것이다.

선명한 화면이 부담스러운 데다 얼굴을 들이미는 장면까지 늘자 여배우들은 성형외과를 찾기 시작했다. 한 드라마 PD는 “HD방송 이후엔 여배우의 연기보다는 외모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며 “드라마 촬영 도중에 성형외과에 다녀오는 여배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근육을 자르거나 마비시키는 성형은 연기에는 마이너스다. 이런 악조건에 적응해 ‘진화’된 연기법을 찾아내는 배우도 있다. 얼굴 연기가 안 되니 대사의 호흡이나 눈빛 연기에 집중하는 식이다. (최근 ‘호텔킹’에서 이다해를 보면서 눈빛 연기가 일취월장했다고 느꼈지만 그녀도 연기가 늘 때가 돼서 늘었을 뿐 다른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초고화질(UHD) 방송까지 나왔다. 월드컵을 앞둔 축구 팬들에겐 희소식이지만 배우들에겐 살 떨리는 변화다. 최근 UHD로 드라마를 촬영한 황준혁 tvN PD는 “UHD는 선명도가 훨씬 뛰어나 어리고 예쁜 배우를 찍어도 그로테스크해 보여서 보정 작업을 하는 데 한참 걸렸다”며 “UHD 시대에는 드라마 촬영을 거부하는 여배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성형#연기#초고화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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