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의 침공)’이 미국을 뒤덮고 있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1964년 비틀스의 빌보드 차트 정상 등극을 시작으로 영국 출신 록 가수들이 잇달아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을 가리킨다. 21세기 ‘침공’은 주인공이 다르다. 록 가수 대신 영국 출신 남자 배우들이 중심이다.
“뼛속까지 영국 배우가 돼야 해. 미국인 배역을 맡더라도 ‘미국인을 연기하는 영국인’이어야 한다고!”
최근 인터넷에서 방영을 시작한 웹시트콤 ‘브리티시 인베이전’에 등장하는 대사다. 주인공은 한국계 미국인 배우 찰스 김. 오디션에서 연달아 떨어진 그는 “네 연기가 아니라 억양이 문제”라는 지적을 받고는 배역을 따내기 위해 영국 억양을 가르치는 연기 학원에 등록한다. 최근 미국 영화 드라마 등에서 주연은 물론 조연급까지 영국 출신 배우들을 집중 캐스팅하는 경향을 풍자한 것이다.
이 시트콤을 기획한 캐시 렌킹 전 미국 NBC 캐스팅 매니저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문지 ‘백스테이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인을 연기하기 위해 영국 배우를 캐스팅하는 최근 경향은 절망적일 정도”라며 “미국 배우들이 영국 배우에 비해 아예 경쟁력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 미국은 영국 용병들이 지킨다
‘미국산 슈퍼히어로’들 역시 영국 배우에게 점령당한 지 오래다. 영국 저지 섬이 고향인 헨리 카빌은 ‘맨 오브 스틸’(2013년)에서 차세대 슈퍼맨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4월 개봉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의 주인공 피터 파커 역을 맡은 앤드루 가필드 역시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3세 때 영국으로 이주해 영국 연극 무대에서 배우 경력을 시작했다. ‘베트맨’ 역시 영국 출신의 크리스천 베일이 꿰찬 지 오래다.
미국 SF 영화 ‘스타트렉 다크니스’(2013년)의 캡틴 커크 역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 ‘어벤져스’(2012년) ‘토르’(2011, 2013년)의 로키 역을 맡은 톰 히들스턴, ‘엑스맨’ 시리즈의 제임스 매커보이, 마이클 패스벤더와 니컬러스 홀트, ‘인셉션’(2010년) ‘다크나이트 라이즈’(2012년)에 출연한 톰 하디 등 최근 할리우드에서 주목받는 배우 대부분이 영국 출신이다.
드라마에서도 미국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을 영국인이 연기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워킹데드’에서 전직 보안관보 릭 그라임스 역을 맡은 앤드루 링컨, ‘홈랜드’에서 이라크전쟁영웅 출신의 미국 하원의원 닉 브로디 역을 맡은 데이미언 루이스는 모두 영국인이다. 드라마에서는 감쪽같이 미국 억양으로 연기하지만 에미상 시상식에선 영국 억양으로 수상 소감을 밝혔다.
○ ‘해리 포터’에서 시작… 연기력으로 인기 견인
해외 언론은 이 같은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출발을 ‘해리 포터’ 시리즈로 꼽는다. 당시 원작 소설의 작가인 조앤 롤링은 조연급까지 영국 배우를 기용하도록 제작진에게 요구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계기로 영국 출신 배우들이 인지도를 쌓고 연기력을 선보일 기회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주연을 맡으며 미국에서 스타로 뜬 로버트 패틴슨도 해리 포터 시리즈에 출연하면서 처음 이름을 알렸다.
영국 출신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도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제임스 매커보이는 스코틀랜드 왕립연극음악학교를, 앤드루 가필드는 ‘런던 센트럴 스쿨 오브 스피치 앤드 드라마’를 졸업했다. 영국 배우들은 상당수가 연극 대학을 졸업하고 연극 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뒤 TV 드라마나 영화로 진출한다. 주로 개인 코치에게 연기를 배우는 미국 배우들에 비해 안정적이고 풍부한 연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워킹데드’의 게일 허드 프로듀서는 최근 미국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는 영국 같은 연기 학교의 전통이 없다. 미국 배우 역시 영국 배우와 같은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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