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원스’로 화제를 모았던 존 카니 감독의 차기작 ‘비긴 어게인’이 개봉 한 달여 만에 관객 200만 명을 돌파했다. 비긴 어게인은 올여름 ‘명량’과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 휩쓸고 간 극장가에서 단연 주목받는 다양성영화다. 블록버스터의 강세가 뚜렷했던 지난달 13일 개봉해 조금씩 입소문을 타더니, 추석이 지난 12일부터 박스오피스 2위로 뛰어올랐다. 》
15일 역대 다양성영화 흥행순위 3위였던 ‘색, 계’(2007년·191만784명)를 제쳤고, 17일 누적 관객이 202만318명을 기록했다. 비긴 어게인은 다양성영화 최대관객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역대 1, 2위는 2009년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293만4409명)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2004년 일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243만3298명)이다.
비긴 어게인이 선전함에 따라 다양성영화를 선정하는 기준에도 새삼 관심이 쏠린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 따르면 다양성영화란 상업영화와 달리 독립된 자본이나 저예산으로 찍은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말한다. 영진위는 2007년부터 다양성영화를 뽑아 지원해 왔다. 다양성영화로 선정되면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 심사비용을 면제받고, 예술영화 전용관에 걸릴 수 있어 안정적 상영 기회를 얻게 된다.
비긴 어게인이 다양성영화로 분류된 데 대해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는 이 영화가 키라 나이틀리와 마크 러펄로, ‘마룬5’의 보컬 애덤 러빈이란 초호화판 배우들이 출연하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이기 때문이다. 제작비도 2500만 달러(약 259억 원)로 190억여 원을 들인 ‘명량’보다 훨씬 많이 들었다. 왜 이런 작품이 다양성영화로 선정됐을까.
다양성영화라고 반드시 저예산 영화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다양성영화를 정의하는 기준은 이름처럼 다양하다.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어느 쪽으로건 조건이 맞으면 다양성영화로 분류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비긴 어게인은 음악을 다룬 예술영화로 평가받아 다양성영화 자격을 얻었다. 다양성영화가 되려면 개봉관 기준도 충족해야 한다. 200개관이나 하루 840회 이상 상영하는 작품은 신청을 할 수 없다. 비긴 어게인은 185개관(482회)에서 개봉했다.
국내 시장점유율이 1% 이내인 국가의 작품도 다양성영화가 될 수 있다. 보통 한국과 미국 프랑스 일본을 제외한 나라의 영화가 이에 해당한다. ‘색, 계’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영진위 국내진흥부 주성충 팀장은 “이 작품은 대만 자본으로 제작했다는 자료를 제출해 다양성영화 기준을 충족시켰다”고 설명했다.
‘명량’ 같은 대형 배급사들의 작품이 영화 독과점 논란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그나마 작은 영화들을 돕기 위한 다양성영화 혜택에 비긴 어게인 같은 할리우드 영화까지 숟가락을 얹어야 할까. 올해 상반기 화제를 모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편의상 다양성영화로 불렸지만 실제로는 신청하지 않았다. 편장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은 “상영관 확보가 쉽지 않은 저예산 영화들을 좀 더 챙길 수 있는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진위도 이런 현실을 감안해 정책 보완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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