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좋고 풍광도 좋고… 해외영화제서 먼저 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20일 개봉 조근현 감독의 ‘봄’

영화 ‘봄’의 남자주인공인 조각가 준구(박용우)와 누드모델 민경(이유영). 프리비젼 제공
영화 ‘봄’의 남자주인공인 조각가 준구(박용우)와 누드모델 민경(이유영). 프리비젼 제공
1969년 경북 포항.

흑백TV에서 정치 뉴스가 쏟아지던 시절. 허나 그곳은 한가로워 보일 정도로 잔잔하다. 조각가로 이름 날리던 준구(박용우)는 병을 얻어 삶의 의욕도 잃고 낙향한 상태. 지고지순으로 남편을 돌보던 정숙(김서형)은 우연히 마주친 애기엄마 민경(이유영)에게 남편의 누드모델이 되어주길 부탁하는데…. 손사래 치던 민경은 상이용사 동거남(주영호)과의 각박한 살림살이를 벗어나 보려 결국 준구의 집으로 향한다.

20일 개봉하는 조근현 감독의 ‘봄’은 해외영화제에서 먼저 알아본 영화다. 미국 애리조나영화제와 댈러스영화제, 이탈리아 밀라노영화제, 스페인 마드리드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밀라노에선 김서형, 마드리드에선 이유영이 여우주연상도 수상했다. 한국영화 가운데 주연 여배우 둘 다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건 처음이라 한다.

상까지 받았다는 얘길 들어서인가. 배우들의 연기는 굉장히 있어 보인다. 특히 김서형은 ‘놀랄 노’자다. 막장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선보인 광란의 연기가 새긴 오랜 잔상을 시원하게 떨쳐낸다. 물론 확 돌변하지 않을까 기대감(?)도 내심 가졌지만, 살랑살랑 술잔을 딱 채운 듯 차분하되 흔들리는 감정을 잘금잘금 쌓아간다.

이유영도 만만치 않다. 과감한 노출이야 신인이라 그렇다 치자. 스물다섯(1989년생) 어린 처자가 어찌 그리 삶에 지친 곤궁함을 순수한 듯 무심하게 얼굴에 담는지. 대사 전달력은 아쉽지만 처연한 머리칼과 어우러진 눈빛은 여운이 길다. 여배우들에 비해 덜 주목받긴 했지만 박용우도 중심을 잘 잡았고, 주영호 역시 전형적인 역할을 깔끔하니 소화했다.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는 풍광이다. 조 감독은 현대사의 그림자가 짙었던 전작 ‘26년’(2012년)과 달리 시대적 배경을 최대한 덜어내고 등장인물에만 집중했다. 자칫 단조로울 법했던 구성은 파르라니 펼쳐진 밭과 눈부신 황톳길, 호숫가가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나온 감독의 강점을 제대로 살린 셈. 아스라이 젖어드는 수채화처럼 억지스럽지 않게 매조지하는 극의 흐름도 ‘문예영화’로서의 미덕을 잘 살렸다. 18세 이상.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봄#조근현 감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