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20년 전 영화 ‘덤 앤 더머’(1994년)는 제대로 쇼킹했다. 멍청하기보단 정신병자 같았던 로이드(짐 캐리)와 해리(제프 대니얼스)의 만행(?)은 당시 둘을 덜떨어진 남성을 뜻하는 일반명사로 만들었다. 그 속편 ‘덤 앤 더머 2’가 27일 개봉한다.
한국 나이로 대니얼스는 예순, 캐리는 쉰셋. 여전히 유쾌하게 모자라고 추레하고 저질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뀐 뒤에도 돌아올 수 있었던 미국 바보들의 저력은 뭘까. 국내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한국 바보들과 비교해 보았다.
○ 美 ‘성기 발랄’ vs 韓 ‘성적 거세’
해리 한 번 속이려 식물인간 행세를 한 로이드는 20년 만에 “서프라이즈(놀랐지)”를 외치며 병상에서 일어난다. 해리는 로이드의 거기에 달린 소변 관을 마구 잡아당기며 화장실 유머로 포문을 연다. 성적 호기심 가득했던 두 바보는 2편에서도 러닝타임 109분 내내 불끈거린다.
성에 무지하지만 그래서 더 적나라한 미국 바보들에 비하면 한국 바보들은 갓난애 수준이다. ‘웰컴 투 동막골’(2005년)의 여일(강혜정)이나 ‘맨발의 기봉이’(2006년)에서 기봉(신현준)은 반려동물의 안타까운 ‘중성화수술’이라도 받은 듯 그쪽으론 관심도 없다. ‘바보’(2008년)의 승룡(차태현)은 지호(하지원)를 향한 큰 사랑을 품고, ‘7번방의 선물’(2012년) 용구(류승룡)는 딸까지 낳았는데도 별로 다르지 않다.
지능과 욕망은 별개임에도 한국의 바보들을 왜 거세 상태일까.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좋게 보면 순수의 상징, 나쁘게 보면 무능의 대상으로 사회와 떼어놓고 보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동네마다 있던 바보 ‘형아’들이 어느 순간 격리돼 사라진 것처럼, 사회가 그들에게 그런 자유를 부여하지 않는단 뜻이다. ‘바보는 순박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사회적 통념이 영화에도 반영된 셈이다.
옛날이 더 자유분방했다. 1982년 임권택 감독의 ‘안개마을’에 나온 깨철(안성기)은 전형적인 동네 바보지만 마을 아낙들의 성적 불만을 해소해주는 엄청난 활약을 했다. 새로 부임한 여교사를 보며 안광을 번득일 만큼 욕정에 솔직했다.
○ 韓 ‘체제 순응’ vs 美 ‘일탈·전복’
한국 바보들은 반항할 줄 모른다. 기봉이나 용구는 괴롭히고 때려도 다 받아준다. 이들이 속이 깊어서란 뉘앙스를 비치지만, ‘사회적 약자’의 지위를 고착화하는 건 변함없다.
반면 해리와 로이드는 오히려 가해자다. 20년 전 그들에게 죽은 새를 샀던 이웃집 소년 빌리(브레이디 블룸)는 속편에서도 깜짝 출연해 괴롭힘을 당한다. ‘덤 앤 더머’들이 보기엔 타인과 세상이 멍청한 거다.
서구문화는 주류를 조소하고 까발리는 코미디 정서에 충실하다. 바보를 체제 부적응이 아닌 자의적 거부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두 바보가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무참히 비웃는 장면도 그런 맥락이다. 김 평론가는 “영국을 대표하는 바보 ‘미스터 빈’처럼 기존의 권력에 맞서고 풍자하는 배수구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분석했다.
로이드와 해리는 여전히 까불까불하지만 반항기는 묽어졌다. 전작에서 흥청망청 돈 쓰고 미녀들 가득한 버스에 올라탔던 젊은이들은 이제 지나가던 여성 넘어뜨리기 정도에 만족하는 아저씨(혹은 할아버지)가 됐다. 1990년대 바보조차 성공하던 호황기와 금융위기를 직격탄으로 맞고 루저의 정서가 지배하는 시대는 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 덤 앤 더머는 이를 ‘웃프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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