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이 개봉 8일째인 24일 관객 230만 명을 넘어서며 연말 극장가 흥행을 이끌고 있다.
이 작품은 1950년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사의 주요 사건을 다룬다. 특히 20대의 덕수(황정민)가 동생 학비를 벌기 위해 광부로 독일로 떠나는 에피소드는 영화의 중요한 축이다. 덕수는 독일에서 파독 간호사 출신인 아내 영자(김윤진)를 만난다. 실제 파독 광부와 간호사 출신 부부인 하대경 한국파독연합회장(73)과 박혜순 한국카운터테너연구소장(64)은 영화에 대해 “비교적 시대적 배경과 당시의 디테일을 잘 살린 영화”라고 평했다.
○ 가난한 나라의 젊은이들, 독일은 기회의 땅
극중 덕수와 영자처럼 1960, 70년대엔 많은 20, 30대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독일로 떠났다. 51년 전인 1963년 12월 21일을 시작으로 1977년까지 7936명이 당시 서독에 광부로 파견됐다. 파독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그 규모가 더 컸다. 1966년부터 1977년 사이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1만1057명이 독일로 떠났다. 독일행 러시엔 당시 높은 실업난과 외화 부족 사태도 한몫했다. 하 회장은 “1960년대 대졸자 실업률이 30% 가까웠다. 나 역시 대학 졸업 후 해외 취업을 생각하다 광부로 지원했다”면서 “3년 계약직에 초봉이 월 600마르크로, 당시 돈으로 4만∼5만 원 정도였는데, 이는 직장인 월급의 8배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예고를 졸업한 후 스무 살에 간호조무사로 파견된 박 소장은 “독일은 ‘기회의 땅’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해외 출국 규정이 엄격했던 당시 독일에서 돈을 벌어 이후 유학을 계획한 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영화에서 1963년 독일로 떠난 덕수는 초기 파견자에 속한다. 그는 쌀가마니 들기 테스트와 면접을 거친다. 그만큼 파독 광부 선발 경쟁은 치열했다. 하 회장은 “‘400명 뽑는데 4만 명이 지원했다’는 기사가 있다. 선발 방식이 여러 번 바뀌었고, 쌀가마니 들기 테스트는 그중 하나였다. 공통 조건은 체중 60kg 이상이었는데 가난했던 시절이라 미달이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 리얼리티 잘 살린 광산, 파독 광부-간호사 로맨스
덕수와 친구 달구(오달수)가 일한 독일 광산은 리얼리티를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극중 함보른 광산은 한국인이 많이 파견돼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4년 12월 격려차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독일에는 과거 모습을 간직한 광산이 남아 있지 않아 제작진은 체코 오스트라바 탄광 박물관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영화에서 덕수는 광산 사고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는 것으로 나온다. 하 회장은 “60여 명의 파독 광부가 당시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덕수 부부처럼 실제 독일에서 만나 결혼한 광부와 간호사 커플이 적지 않았다. 영화처럼 친목파티를 여는 등 교류가 활발한 편이었다. 박 소장은 “20, 30대 젊은이들이라 만남이 활발했다. 일부는 달구처럼 독일인과 데이트를 즐겼다”고 했다.
○ 영화의 베트남전 장면은 ‘옥에 티’
반면 부부는 독일 내 한국 간호사의 처우를 지나치게 열악하게 그린 것은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박 소장은 “간호사 업무는 병원에 따라 다양했다. 영화에서 주 업무를 시체 닦는 것으로 묘사한 것은 과장된 면이 있다”고 했다.
한편 덕수는 독일에서 귀국한 후 여동생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술근로자로 전쟁 중인 베트남에 간다. 영화처럼 파독 광부 중엔 베트남전 경험자가 많다. 그러나 실제로는 순서상 반대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 회장은 “광부들은 보통 1960년대 베트남전 참전 후 1970년대 초반 독일에 왔다”고 전했다. (실제 영화의 베트남전 장면은 ‘옥에 티’라는 지적이 있다. 덕수는 1974년경 베트남에 가서 당시 해병대로 파병된 가수 남진을 만나지만 사실 남진은 1969년 참전했고, 한국군은 1973년 3월 베트남에서 철수를 완료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