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이 대세다. 예능 프로도, 드라마도 음식 만들고 먹는 모습으로 승부를 건다. 그 선두에는 ‘집밥’이 있다. 음식이 투박하고 쉬워 보일수록 잘된다. 시골 부엌에서 가마솥으로 요리하는 예능 프로가 화제를 모으고 서울 홍대 앞이나 서촌 같은 ‘핫’한 지역에서는 ‘일본식 가정식’, ‘프랑스식 가정식’이 들불처럼 유행한다. 이 집밥 열풍을 찬찬히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작에 바로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이 있다.
2009년 시작해 올해 세 번째 시즌을 마친 심야식당은 예전 그대로다. 한밤중에 ‘메시야(밥집)’라는 간판을 내걸고 문을 여는 심야식당에는 그날 형편과 손님 입맛에 맞춘 음식이 메뉴에 오른다. 이번 시즌에도 엄마가 해줬던 양배추롤, 첫사랑이 좋아했던 당면샐러드, 죽은 남편과 함께 먹었던 ‘멘치가스’ 같은, 편안하지만 사연 있는 음식으로 승부를 건다. 포인트는 집에서 해먹는 것 같은 음식일 것.
그런데 1편당 채 30분도 안 되는 드라마를 보다 보면 다이어트 파괴자로 악명이 높았던 먹방의 원조답지 않게 의외로 밍밍하게 느껴진다. 음식 클로즈업도 적고,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지도 않으며, 화려한 요리 기술을 선보이지도 않는다. 드라마는 변한 것이 없는데도 밍밍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그새 고화질(HD) 화면에 한가득 비치는 윤기 나는 음식과 후루룩 쩝쩝 소리 내 먹는 과장된 제스처의, 조미료 친 먹방에 길들여진 탓이다.
대신 심야식당은 ‘집밥’에 얽힌 환상을 충실히 구현해내 감칠맛을 살린다. 같이 밥 먹는 ‘식구’에 대한 환상이다. 이 시대 혼자 사는 남녀에게 집밥이란 도달하기 힘든 꿈이다. 해 먹자니 힘들고, 겨우 상을 차려도 혼자서는 목에 턱턱 걸린다. (그러니 괜히 밥 먹다 말고 사진 찍어 페이스북이나 카톡에 올리는 거다) 그런데 심야식당에는 뭐든지 다 되는 만능 요리사에 묵묵히 고민을 들어주는 마스터와, 옆에서 슬금슬금 한마디씩 거드는 뒷골목 사람들이 있다. 내 인생 깊숙이 개입하는 ‘가족’은 아니되 밥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 들어주는 ‘유사 식구’들이다.
시즌3 마지막 회는 ‘유사 식구’의 정점을 보여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 같이 식당에 모여 마스터가 말아준 ‘해넘이 국수’를 먹으며 새해를 맞는다. 부모님이나 친척 잔소리는 없고 어깨 부딪히며 체온 나누는 정겨움만 남아 있다. 누구나 꿈꿀 만한 환상적인 명절나기다. 투박하고 소박한 먹방이 HD급 고화질 휘황찬란 먹방보다 입맛 당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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