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1일 한 영화평론가는 영화 ‘언브로큰’(8일 개봉) 시사회를 본 뒤 투덜거리듯 한마디 했다. 개봉 전부터 일본 극우의 성마른 반응으로 주목받은 이 영화는, 평론가 반응처럼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묘사만 놓고 보면 가소롭기 짝이 없다. 물론 작품성과 별개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루이(잭 오코널)는 언제나 부모 속을 썩이던 말썽쟁이. 어느 날 형의 권유로 육상을 시작하며 자신의 재능에 눈을 뜬다. 열아홉에 베를린 올림픽까지 출전하며 주목받는 운동선수가 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나라의 부름을 받는다. 공군으로 입대해 여러 전투를 치르던 루이는 아군 구조작전에 나섰다가 태평양에 추락하게 되는데…. 망망대해에서 동료들과 47일이나 표류하다 겨우 목숨을 건지지만, 그를 구한 건 다름 아닌 일본 군함. 전쟁포로로 수용소로 끌려간 루이 앞엔 잔혹한 일본군의 폭압이 기다리고 있다.
최근 국내에도 출간된 동명소설이 원작인 영화는 지난해 7월 세상을 떠난 루이 잠페리니(1917∼2014)란 인물의 실제 경험을 다뤘다. 원작자 로라 힐런브랜드가 7년 동안 그를 취재했을 만큼 꼼꼼한 사실에 바탕을 뒀다. 이를 조엘, 이선 코언 형제가 각본에 참여하고 스타 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연출을 맡으며 화제를 모았다. 졸리 감독은 “어둠을 헤치고 빛을 찾는 젊은이의 여정이 큰 영감을 줬다”고 소회를 밝혔다.
영화는 꽤나 매끈한 이음새를 갖췄다. 잠페리니의 삶이 워낙 극적이라 담담하게 흘러가는데도 울림이 있다. 여러 차례 등장하는 “견딜 수 있으면 이길 수 있다”는 잠언도 설득력 있다. 오코널은 물론이고 와타나베 상병을 연기한 일본 록 뮤지션 미야비의 연기도 나쁘지 않다.
허나 일부겠지만 일본의 유치한 반응이 아니었다면, 그냥 ‘괜찮은 작품’이었을 영화가 이만큼 시끄러웠을까 싶긴 하다. 미 일간지 USA투데이에 따르면 일 극우세력은 졸리 입국 거부 및 영화 보이콧 운동을 벌이고 있다. 조부모가 한국계로 알려진 미야비도 비난의 도마에 올랐다 한다. 근데 솔직히 영화에서 묘사한 일본군 만행은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왜 루이만 괴롭히나 싶은 것 외엔 훨씬 잔혹하고 비열했던 당시의 일들을 순화한 듯한 기분마저 든다.
뻔한 말이지만 영화에 대한 평가는 관객의 몫이다.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된다. 그걸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니까. 다만 일본 극우의 태도를 비난하고 싶다면 우리 모습도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맘에 안 든다며 상영을 걸고넘어진 경험. 그리 오래전도 아니다.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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