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인에게 “칼럼 제목에 비해 반듯한 내용만 다룬다”는 지적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 시청 패턴은 굳이 애를 재우고 보지 않아도 될 만큼 보수적이며 평이했던 게 사실이다.
그간의 나태함에 대한 반성으로 드라마 속 베드신을 분석했다. 최근 베드신으로 온라인상에서 기사화된 드라마는 KBS 월화드라마 ‘힐러’의 주인공인 지창욱과 박민영의 베드신, MBC 수목드라마 ‘킬미, 힐미’의 주연급 조연 오민석과 김유리의 베드신 정도다. 몇몇 기사는 이들 드라마 속 베드신을 ‘이토록 로맨틱한…’(힐러), ‘화난 등 근육 노출’(킬미, 힐미) 등의 수식어로 포장했다. 그러나 실제 해당 장면을 찾아본 후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남녀 주인공이 이불을 덮어쓰고 꿈틀거리는 모습은 그저 정겨웠고, 남자 배우가 따로 운동을 하며 만들었다는 등 근육은 5초 내외로 노출됐다.
온라인 반응도 비슷했다. 드라마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지나치게 퓨어했다” “(남주인공의) 하얀 난닝구는 안 입었어야 한다”(힐러), “베드신이 아니라 기지개신” “(여주인공이 입은) 끈에 보석이 달린 속옷이 거슬린다”(킬미, 힐미) 등 불만이 적지 않다.
다만 다수의 드라마에서 찾아낸 베드신의 법칙은 있었다. 보통 남배우는 허리선까지 상체 노출, 여배우는 쇄골과 어깨 노출이 기본이다. 영화 속 베드신이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육체를 쫓아가는 장면이 많고 한쪽의 얼굴만 주로 보이는 데 반해 드라마는 반대다. 신체 노출은 물론이고 눈빛 연기건 팔베개건 남자 배우의 역할이 많다. 또 남녀 배우의 키 차이와 별개로 남배우는 침대 위쪽에, 여배우는 그보다 조금 아래에 누워 둘의 얼굴이 모두 보이는 구도가 대부분이다. 한 드라마 PD는 “기본적으로 드라마는 15세 시청가여서 자극적인 뭔가를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하지만 드라마 작가 중 여성이 많고, 여성 시청자가 많은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면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원거리에서 보여줬던 키스신은 이제 배우 입술을 클로즈업할 만큼 ‘들이대’ 촬영하고, 그 시간도 10초 안팎으로 길어졌다. 한때 호롱불을 끄는 장면으로 모든 베드신을 은유했던 사극은 후궁 간택 과정을 비롯해 ‘핫’한 설정과 노출이 많은 ‘어른들의 장르’로 꼽힌다.
1990년대 초 신문에서는 ‘속살이 비치는 속옷 차림으로 침대에 앉아 있는 모습을 내보냈다’ ‘신혼 첫날밤 베드신을 반투명 유리를 통해 보여줘 시청자를 자극했다’는 내용의 비판 기사가 적지 않다. 남녀 배우가 어깨만 드러냈건만 ‘야한 장면 많다고 워스트 프로그램 작가가 될까봐 걱정’이라고 말하는 방송작가도 있었다. 누구에겐 너무 빠르거나, 다른 누구에겐 더뎌 보일 수도 있지만 어쨌건 베드신도 변하긴 했다. 세상이 그렇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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