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춘제(春節·중국 설) 대목을 앞두고 지난달 30일 개봉한 ‘달려라 형제’는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을 극장판으로 만든 것이다. 개봉 이틀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이미 4억 위안(약 700억 원)을 벌어들였다. 한류 콘텐츠의 인기에 폭발적인 영화 수요가 맞물려 한국 예능프로그램까지 영화 포맷으로 살짝 바꿔 극장에 거는 기현상이 나타난 셈이다.
○ “웬만한 제작사는 투자 제의 받았을 것”
본보가 영화계 주요 인사 33명을 상대로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영화계 흐름’을 설문 조사한 결과 81.8%(복수 응답)가 ‘중국 및 해외자본의 유입’을 꼽았다. 중국 자본의 국내 진출은 완성작 구입이나 국내 인력 진출 단계를 넘어 공동제작, 제작사 지분 매입, 판권 구입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 국영 영화사인 차이나필름그룹은 최근 한국의 한 영화제작사가 만들 영화에 5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 그룹은 다양한 투자처를 추가로 물색하고 있다. 또 중국 미디어 시장점유율 1위인 화책미디어그룹은 지난해 10월 국내 투자배급사인 ‘뉴’에 535억 원을 투자해 지분 15%를 확보하고 제2대 주주가 됐다. 서동욱 뉴 부사장은 “화책과 중국에 합작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으며 올 하반기에 가시화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제작사 대표 A 씨는 “요즘 웬만한 제작사치고 중국으로부터 공동제작이나 투자 제안을 받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중국 측과 공동제작을 하고 있는 국내 영화는 장윤현 감독의 ‘평안도’를 비롯해 10편 남짓 된다. ‘괴물2’ ‘엽기적인 두 번째 그녀’ 같은 후속편이나 ‘미녀는 괴로워’ 등 리메이크작이 많다. ‘엽기적인…’의 한국 측 제작사인 ‘신씨네’ 신철 대표는 “1편 격인 ‘엽기적인 그녀’가 중국에서 개봉되진 않았지만 중국인 3억 명 이상이 DVD 혹은 주문형비디오(VOD)를 통해 본 상황이어서 후속편의 흥행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중국 간 배우 두 달 반째 기다려”
중국 자본에 대한 시각은 우려와 기대가 엇갈린다. 당장 자금이 들어온다는 점에선 순기능 역할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 입맛에 맞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하청업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견 영화제작자 B 씨는 “오랜 시간을 들여 개발한 시나리오를 비롯해 시행착오를 통해 축적한 노하우를 중국은 자본으로 쉽게 가져가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국 자본 유입이 국내 영화계에 거품을 일으킨다는 지적도 있다. ‘마이웨이’(2011년) ‘미스터 고’(2013년) 등 중국 측의 투자를 받은 영화들은 평단과 국내 관객에게 외면받았다. 배급사 관계자 C 씨는 “국내 자본만 갖고 만들었다면 200억 원 넘게 투자할 만한 영화들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국 배우의 중국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캐스팅도 어려워졌다. 실제로 설문조사에서 영화계 현안으로 10명(30.3%)이 과도한 배우 몸값 등 제작비 상승을 꼽아 대기업의 수직계열화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B 씨는 “중국에서 촬영하고 있는 여배우를 두 달 반째 기다리느라 영화 진행을 못하고 있다”며 “1년씩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제작사 관계자 D 씨는 “인기 절정인 한류 스타가 중국 영화 출연료로 중국 톱 배우 수준인 40억∼50억 원을 요구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불가능하지 않은 액수”라고 말했다. 이런 몸값 상승이 국내 영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과거에도 중국 시장만 고려해 영화가 산으로 간 사례가 적지 않았던 만큼 ‘차이나 머니’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라며 “해외 자본 활용과 함께 국내 영화산업의 내실을 다지는 작업도 함께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설문 및 인터뷰 참여자 33명 분야별 가나다순.▼
▽감독=김한민(대표작 ‘명량’), 김현석(‘쎄시봉’), 윤제균(‘국제시장’), 진모영(‘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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