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빵사로 일하는 팔레스타인 청년 오마르(아담 바크리)는 오늘도 장벽을 넘는다. 장벽 너머에 사는 여자친구 나디아(림 루바니)를 만나기 위해서다. 오마르는 여자친구와의 결혼과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이스라엘 군인 총격 사건에 휘말려 경찰에 체포되고, 스파이가 되라는 제안을 받는다.
5일 개봉한 영화 ‘오마르’는 팔레스타인 감독 배우 제작진이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린 영화다. 무슬림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가 전 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지금, 팔레스타인의 불안과 절망을 엿볼 기회이기도 하다.
● 삶을 가로지르는 장벽
“내 의도는 실제 팔레스타인을 보여주는 것이다. 장벽이 아무렇게나 도시를, 마을을, 사람들을 가로지르는 곳 말이다.” (하니 아부 아사드 감독)
오마르가 넘나드는 장벽은 바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둘러싼 분리장벽이다. 2002년 2월 이스라엘 정부가 건설하기 시작했다.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는 이 장벽이 팔레스타인인의 인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철거해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실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친구나 친척 집, 직장, 학교, 자신 소유의 밭에 가기 위해 5~8m 높이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영화처럼 밧줄을 사용하거나 사다리를 놓고 장벽을 넘나든다. 경비를 서던 군인의 총에 맞거나 벽에서 떨어져 다치거나 죽는 일도 일어난다.
오마르가 장벽을 타는 장면은 허가를 받아 실제 장벽에서 일정 높이까지 촬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벽을 넘는 순간을 촬영하는 것은 허가를 받지 못해 2m 높이의 세트를 따로 제작했다. 촬영 도중 제작진이 경비를 서던 이스라엘 군의 총격을 받는 일도 벌어졌다. 이 때문에 밧줄이 잘 보이지 않도록 설치해 촬영을 진행해야 했다.
● 장벽이 가로지르는 삶
“이 동네를 나가본 적은 있어?”(오마르) “헤브론(서안지구의 가장 큰 도시)은 가봤어.”(나디아) “거기가 (프랑스) 파리나 다름없지.”(오마르)
오마르가 나디아와 신혼여행을 꿈꾸며 나누는 대화에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의 삶이 압축돼 있다. 해외여행은 물론 사는 마을을 벗어나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은 이들에게 평범하고 행복한 삶은 사치다.
감옥에서 출소한 오마르는 연인과 친구에게조차 이스라엘에 협조하는 변절자라는 의심을 받는다. 의심에는 이유가 있다. 정부에 약점을 잡혀 스파이가 되는 일은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사드 감독은 “친구가 정부요원에게 ‘네 비밀을 알고 있으니 협력하라’고 스파이 제안을 받은 것에서 영화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말했다. 2013년 구호활동을 위해 팔레스타인을 다녀온 이성종 복지영상 감독은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사회를 분열시키기 위해 고도의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며 “국제 구호단체 대원들도 종종 주민들에게 의심을 받는다”고 말했다. 장벽이 건설되기 시작한 지 13년, 그 사이 장벽은 팔레스타인 사회 내부에도 생겼다.
오마르의 가장 큰 미덕은 웬만한 스릴러 영화 버금가는 긴장감과 반전으로 관객의 눈길을 쉴 틈 없이 붙잡아 둔다는 점이다. 정치적 메시지를 직접 전하는 대신 평범한 청년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밀도 높게 담았다. 제 66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올 미국 아카데미영화제 외국어영화 부문 후보작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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