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5년)에서 마리아(줄리 앤드루스)는 일곱 남매를 두루두루 잘 돌본다. 올해의 오스카는 개봉 50주년을 맞은 마리아를 닮고 싶었던 걸까. 한국 연말 TV 대상에서 영감을 얻은 것처럼 골고루 상을 뿌려댔다.
23일 오전(한국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우리가 남이가’ 분위기가 진득했다. 작품상 후보에 오른 8개 영화가 모두 한 부문 이상씩 상을 거머쥐며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게 배려(?)했다. 최다 부문(9개) 후보였던 ‘버드맨’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역시 각각 4개 부문을 챙겨 최다 수상작에 다정하게 이름을 올렸다. 음악영화 ‘위플래쉬’가 3개 부문(남우조연 편집 음향)으로 뒤따랐다.
씨알 굵은 월척은 ‘버드맨’이 쓸어갔다.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과 각본상 촬영상 등 4개 부문을 알차게 챙겼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각본도 직접 써서 세 번이나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에 이어 2년 연속 멕시코 태생 감독의 수상. 잊혀진 무비스타가 브로드웨이 연극무대에서 재기를 노리는 내용을 담은 버드맨은 국내에선 다음 달 5일 개봉한다. 지난해 국내에서 약 78만 명을 동원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음악·미술·의상·분장 부문이라 중량감이 떨어졌다.
‘버드맨’도 아쉬움은 남았다. 남우주연상에서 유력 후보로 점쳐졌던 마이클 키턴이 고배를 마셨기 때문. 실제로 ‘배트맨’ 1, 2편에서 주인공이었던 키턴이 버드맨이란 슈퍼히어로로 인기를 끌었던 퇴물 배우로 나와 ‘인생 연기’를 펼쳤다. 키턴에게 쓴잔을 내민 이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세계적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를 복사한 듯 연기한 에디 레드메인.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브래들리 쿠퍼는 2013년 숨진 미국의 전설적 스나이퍼 크리스 카일로 분해 3년 연속 주연 후보에 올랐으나 또다시 다음을 기약했다.
반면 줄리앤 무어는 다섯 번째 도전에서 열매를 땄다. 할리우드 ‘연기 갑’으로 평가받으면서도 유독 오스카와 인연이 없던 무어는 ‘스틸 앨리스’로 마침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교수를 실감나게 연기한 그는 1998년 ‘부기 나이트’를 시작으로 네 번이나 주연·조연상에 노미네이트(지명)됐었다. 무어는 “아카데미상을 받으면 5년은 젊어진다는 기사를 봤다. 남편이 연하라 꼭 받고 싶었다”며 농담 섞인 기쁨을 표현했다.
이날 시상식은 섭섭지 않은 수상 안배 말고는 인상 깊지 못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 50주년을 고려해 전체적으로 뮤지컬 분위기를 강조한 볼거리는 풍부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문신 가득한 레이디 가가가 정통 드레스를 입고 ‘사운드 오브 뮤직’ 테마송을 부른 뒤 앤드루스와 포옹하는 장면 정도가 색달랐다.
지난해 두드러졌던 유색 인종과 성적 소수자에 대한 조명도 올해는 살짝 발만 담그는 모양새였다. 86회 아카데미는 흑인 인권을 다룬 ‘노예 12년’과 에이즈 환자를 소재로 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각각 3개 부문을 안겨줬다. 하지만 올해 마틴 루서 킹 목사를 다룬 ‘셀마’는 주제가상, 동성애자 앨런 튜링 교수를 다룬 ‘이미테이션 게임’은 각색상 하나씩 획득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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