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금연이나 금주에 도전하고 있나. 그럼 당분간 ‘버드맨’은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 마지막 들이켰던 잔, 비벼 껐던 꽁초가 비릿하게 입안을 맴돌 테니.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버드맨’이 국내에서 다음 달 5일 개봉한다. 감독상에 각본상 촬영상까지 주요 부문상을 거머쥐었으니 올해 오스카 승자라 할 만하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도 극찬을 쏟아내며 시상식 전부터 작품상 수상작 0순위로 꼽았다.
줄거리만 간추리자면 그다지 복잡하진 않다. 한때 할리우드에서 슈퍼히어로 ‘버드맨’으로 인기를 끌었던 왕년의 톱스타 리건 톰슨(마이클 키턴)이 주인공. 지금은 퇴물로 낙인찍힌 신세지만 권토중래를 꿈꾸며 연극판에 도전한다. 허나 빚까지 끌어다 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과정은 순탄치가 않다. 함께 출연하는 여배우 레슬리(나오미 와츠)는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매니저 역할을 맡은 딸 샘(에마 스톤)은 시종일관 냉소적이다. 게다가 평단의 사랑을 받는 연극배우 마이크 사이너(에드워드 노턴)를 우연찮게 영입했으나 제멋대로 굴며 골치를 썩이고…. 과연 버드맨 톰슨은 브로드웨이에서 꿈처럼 날아오를 수 있을까.
‘21그램’(2004년) ‘비우티풀’(2011년) 등에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돋보였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 이제 그는 버드맨으로 확실히 장인의 경지에 오른 솜씨를 펼쳐 보인다. 블랙코미디인데도 웃음보단 씁쓸함이 가득한 대사. 롱테이크(한 장면 길게 찍기)와 숨 가쁜 편집이 엉키며 빚어내는 영상. 이 모든 걸 재즈뮤지션 안토니오 산체스의 드럼 하나로 어우르는 음악까지. 낯선 흐름이 어느 순간 심장박동처럼 ‘쿵짝’ 합이 맞아 가는 희한한 경험을 선사한다.
발군의 연기는 이를 매조지하는 용의 눈깔(畵龍點睛)이다. 색다른 변신을 보여준 스톤이나 와츠도 근사하다. 원래도 브로드웨이 무대 출신인 노턴은 ‘역시나’ 감탄스럽다. 하지만 키턴. 그가 없었다면 버드맨이 이만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을까. 팀 버턴 감독의 ‘배트맨’을 연기했던 그의 이력 때문에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간다. 한 인터뷰에서 “전혀 설렘을 느끼지 못한 오랜 시기가 있었다”는 고백처럼, 그는 그간 분출하지 못했던 에너지를 이 한 편에 폭발시키는 ‘마스터 키튼’(일본만화 제목)으로 우뚝 섰다.
버드맨은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6년)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짙푸른 바닥까지 떨어지는 벤(니컬러스 케이지)의 서글픈 침잠과 위태롭게 쌓아올린 톰슨의 신경질적인 표류는 색깔이 다르다. 허나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다 못해 영혼을 불안에 내맡겨버리는 안타까움이 닮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웃는 듯 우는 듯 창밖을 내다보는 샘의 눈빛. 어쩌면 가끔씩 자신의 인생조차 구경꾼처럼 속절없이 바라보게 되는 우리네 무력한 심정이 그럴까. 날아오르건 떨어져 내리건 추락하는 버드맨에겐 날개가 있다.
한데 ‘버드맨’은 아카데미 시상식 후 국내에서 엉뚱한 문제로 구설에 올랐다. 극 중 스톤의 대사인 “꽃에서 역겨운 김치 냄새가 난다(It all smells like fucking kimchi)”가 한국 비하가 아니냔 지적이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각자의 몫이다. 다만 스톤은 2014년 출연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에선 “요즘 한국 음식에 완전 중독됐어”란 대사로 화제를 모았다. 18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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