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선보인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출발이 지지부진하다. 1일 기준 24만 명(누적매출액 19억여 원). 하루 평균 5만 명이 안 된다. 해외에서 개봉 열흘 만에 4억 달러(약 4408억 원)를 벌어들인 기세는 찾을 길 없다.
국내에선 왜 이리 잠잠할까. 작품성이 문제는 아니다. 어차피 외국에서도 평단 반응은 참혹했다. 미국 언론 허핑턴포스트는 개막 날 독자를 초대했다가 ‘(이런 영화 보게 해서) 미안하다(We‘re sorry)’를 제목으로 뽑은 기사를 실었다.
궁금하면 물어볼 수밖에. ‘그레이의…’는 원작 소설 때부터 ‘주부들의 포르노’로 불린 작품. 주 타깃이 30대 이상 여성이란 소리다. 딸을 둔 37세 직장인 여성 A와 아들 둘인 40세 전업주부 B, 40대 후반 전문직 여성 C(자녀 없음)에게 영화 관람을 요청했다. 반응은…, 거칠었다. 주말에 시간 내준 그들에게 미안했다.
A=일단 안 야하다. 포르노는 웬걸. 최근 한국 에로가 더 찐하다. 친구랑 어이없어 서로 쳐다봤다. 극장에서도 실소가 자주 들렸다. 딱 한 번, 이병헌 유행어 ‘로맨틱’이 나왔을 때 크게 웃었다. 무조건 벗으면 단가. 분위기가 끈적끈적해야지. 베드신도 색다른 게 없더라. 1990년대 한국 에로영화 수준이다. B=책 보고 은근 기대했다가 실망이 크다. 소설도 짜임새야 별로지만 한 번씩 훅 들어오는 게 있었다. 엘리베이터 신은 정말…. 크리스천(제이미 도넌)이 “도저히 못 참겠다”며 갑자기 키스하는 장면이 짜릿했는데. 영화는 다큐멘터리인 줄 알았다. SM(사디즘+마조히즘)도 수위가 뭐 그러냐. 엉덩이 때리는 거 보고 쇼킹하길 바라나.
C=좀 불편했다. 솔직히 한국 정서랑은 안 맞지 않나. 남편(50대)도 “뭐 이런 걸 보냐”며 성질냈다. 차이를 인정해도 가학적 성애는 공감하기 어렵다. 여성을 노예처럼 다루는 방식도 기분 나빴다. 아무리 상대가 잘 생기고 부자여도 아나스타샤(다코타 존슨)가 사랑에 빠진 맥락을 모르겠다.
A=할리퀸 로맨스(청소년 연애소설)의 성인 버전이더라. 모든 걸 다 가진 나쁜 남자가 평범한 여주인공에게 빠져 모든 걸 다 해주는 설정. 외국에선 여전히 먹힐지 몰라도 한국에선 힘들 거다. 그동안 그런 한국 드라마에 얼마나 단련됐는데. ‘꽃보다 남자’ ‘상속자들’은 같은 설정이라도 훨씬 쫄깃하다. TV만 틀면 공짜로 보는데, 왜 돈 내고 극장 찾나.
B=어느 정도 예견된 거라 본다. 소설도 외국에선 1억 부 이상 팔렸다지만 국내에선 고만고만했지 않나.(출판사 시공사에 따르면 국내에선 6권 합쳐 55만 부가 팔렸다. 이 가운데 전자책이 18만 부를 차지한다) 게다가 책은 혼자 보지. 극장은 누가 같이 가야 제맛인데, 웬만큼 친하지 않으면 말 꺼내기도 힘들다.
A=그래도 혹시나 하고 찾는 사람은 있겠지. 주위에 물어보면? 각자의 선택이지만 추천할 맘은 안 든다. 다만 인터넷 찾아보니 2, 3부가 나온다던데 뒤가 궁금하긴 하다. 기다려지는 게 아니라 1편이 너무 싱겁게 끝나서. 근데 원작자랑 감독이랑 다퉜다는데 나올 수 있을까.(실제로 샘 테일러존슨 감독은 원작자 E L 제임스와의 불화를 실토했다)
C=딴 건 다 제쳐두더라도 남자 주인공의 매력이 떨어진다. 허여멀게 가지고…. 구릿빛 피부에 더 늘씬해야지. 뭣보다 여자 꼬드기며 노트북 1대가 뭐냐. 우리 남편도 그 정돈 사준다. 물론 헬리콥터나 전용기는 없지만. 자꾸 어느 수위까지 SM을 할 것인지 계약서 쓰자는 거 보니 좀스럽기도 하고.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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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3 06:19:22
특히 영화는 언론이 바람잡이 노릇이 심한 것 같습니다. 기자들이 영화사부터 돈은 받아서인지 무료영화표를 많이 받아서인지 과장 보도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언론사의 과대선전으로 영화 본 후에 실망한 경험은 대부분 갖고 있습니다
2015-03-03 08:24:25
주간지 애로가 일간지에서 놀고 TV 는 수다로 하루를 보내고 뉴스도 심층 취재를 한답시고 두사람을 불러 마치50/50 의 잉상으로 얼버무리고...! 재벌이된 언론은 가난한 서민인척! 서민의 기사는 없고 애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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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3 06:19:22
특히 영화는 언론이 바람잡이 노릇이 심한 것 같습니다. 기자들이 영화사부터 돈은 받아서인지 무료영화표를 많이 받아서인지 과장 보도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언론사의 과대선전으로 영화 본 후에 실망한 경험은 대부분 갖고 있습니다
2015-03-03 08:24:25
주간지 애로가 일간지에서 놀고 TV 는 수다로 하루를 보내고 뉴스도 심층 취재를 한답시고 두사람을 불러 마치50/50 의 잉상으로 얼버무리고...! 재벌이된 언론은 가난한 서민인척! 서민의 기사는 없고 애로로?
2015-03-03 14:39:06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영화, 드라마, 언론이 우리의 미풍양속을 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