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아이언(정헌철·23)은 스물한 살에 단돈 8만원을 들고, 고향인 전북 익산에서 상경했다.
10살 무렵부터 힙합에 빠져 열다섯 살에 ‘무대’에 서기 시작한 아이언은 “더 많은 무대에 오르기 위해” 짐을 쌌다.
앞서 그보다 2년 전 방시혁이 이끄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서 랩몬스터, 수프림보이와 함께 힙합그룹을 준비하던 때와는 또 다른 각오도 가슴에 품었다.
가진 돈이 없어 친구의 집에 얹혀살아야 했고, 친구가 늦는 날은 근처 “지하철역에 누워”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자신감과 열정만은 가득” 했다.
친구 집을 전전하다 주변의 권유로 나가게 된 케이블채널 엠넷 ‘쇼 미 더 머니’ 시즌3는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를 안겼다.
‘듣보잡’ 래퍼였던 아이언은 작년 9월 끝난 ‘쇼 미 더 머니3’에서 바스코와 같은 베테랑과 YG엔터테인먼트 연습생인 바비, 비아이와 겨뤄 ‘쫄지 않는’ 강심장과 독기, 독특한 랩핑으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악에 받힌 듯 내지르는 랩핑으로 ‘쇼 미 더 머니3’에서 선보인,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독기’는 시청자의 많은 공감을 샀다. 힙합팬들에겐 새로운 힙합스타 탄생의 반가움을 준 것이다.
아이언 스스로에게도 ‘쇼 미 더 머니’는 엄청난 배움의 장이었다.
랩은 “가사 전달력을 위해선 발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힙합이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데 급급하거나, 센 척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또 사회는 혼자 살 수 없는 곳이고, 힙합도 여러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쇼 미 더 머니3’가 끝난 후 아이언은 많은 기획사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자신의 우상이었고 ‘쇼 미 더 머니3’에서 인연을 맺은 양동근 소속사의 손을 잡았다.
워낙 화제의 인물이었던 터라, 금세 음반이 나오리라 예상됐지만 6개월이나 흐른 3월 말에야 첫 싱글 ‘블루’가 나왔다.
‘블루’는 그가 처음 래퍼로 무대에 오른 후 8년 만에 나온 메이저 시장 데뷔작이다.
“그동안 자신감이 없었던 것 같고, 내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던 듯하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슬럼프도 있었다. 한국어 발음을 지키면서 영어의 그루브(흥겨움)도 지키며 랩을 악기연주처럼 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블루’는 모던록이 접목된, 독특한 아이언식 힙합곡이다. 어려서 전인권, 김현식의 음악을 많이 접한 듯한 창법이 아이언의 랩핑에 묻어나온다.
“음악의 편견을 깨고 싶다. 힙합이나, 록이나, 랩이나 그 안에 가진 솔(soul)은 똑같다. 한국인의 정서는 한(恨) 아니냐. 아이언의 랩은 솔직함이다. 그 솔직함은 자신감이다. 나는 표현에 있어 거침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아이언은 조숙했지만 사고뭉치였고, 거칠었다.
초등학생 시절, 당시 품었던 꿈이 무산(될 거란 확신을 갖게)된 후 방황도 했고, ‘사람은 돈이 있어야 한다’는 세상의 ‘현실적’ 이치도 알게 됐다. “범법행위를 한 적은 없지만” 친구들과 싸우기도 많이 했다. 부모의 속을 썩이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아이언은 ‘힙합계 신성’이고, 또 어느 정도 ‘유명인’이 됐다.
그는 “유명세는 나랑 안 맞는 것 같다”면서도, 유명세를 받아들여야 한다면 “좋게, 멋있게 유명해져야겠다”고도 했다.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싶냐고? 의로운 ‘양아치’, 선한 ‘양아치’가 되고 싶다. 내가 양아치였다가 어느 날 하루 아침에 ‘나’를 숨기고 사는 건 내 성격에 맞지 않다. 난 23년을 이렇게 살았다. 그런데 이제 바뀌어야 한다. 보는 눈이 많아졌으니, 착한 척도 해야 된다. 이건 내 삶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예전처럼 살아서도 안 되니, 앞으로 음악으로 표현하고 살겠다. 그래서 음악으로 유명해지고 싶다. 명곡을 만들고 싶다. 시대가 변해도 사람들이 즐겨듣는 명곡 말이다.”
아이언에게 힙합을 물으니, 그는 “디스(diss)로 힙합을 보지 말라”고 했다.
“힙합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 음악의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힙합은 ‘패거리 문화’지만,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더불어 사는 하나의 공동체다. 힙합은 우리가 사는 방식, 태도와 같다. 센 척하는 게 아니라 자신감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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